[사설]知性의 침묵과 역사 왜곡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오늘 정년퇴임하는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가 한 신문 인터뷰에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는 교과서로서 지켜야 할 선(線)을 넘었다”며 “좌(左)편향 서술을 지적하지 않은 것은 역사학계의 책임회피였다”고 말했다. 학계 원로로서 쉽지 않은 발언을 해준 용기를 평가하면서도 역사학회 회장을 지낸 교수가 그동안 말을 아끼다가 정년퇴임을 앞두고서야 자성(自省)의 변을 밝힌 데 대해선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정부가 작년 10월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좌편향 기술의 수정 방침을 밝히자 역사 관련 21개 학회는 ‘역사학계와 교사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언행을 삼가라’면서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그 수정작업은 필자들이나 역사학계의 엄밀한 검토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성명을 냈다. 이 교수는 ‘좌편향 교과서를 두둔한 셈이 된’ 이 성명이 나온 배경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지금 교수가 돼서 역사 관련 학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말로 설명했다.

근현대사를 민중(民衆)봉기나 계급투쟁 중심으로 파악하는 좌파적 역사관이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흐름에서 나온 전교조 사관(史觀)은 고교 교실에서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의 채택률을 압도적 1위로 끌어올렸다. 노무현 정부 후반 무렵부터 좌편향 교과서에 대한 수정운동을 펼친 사람들도 국사 전공자가 아니라 서양사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한 용기 있는 학자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국사)학계는 전체 학계와 국민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이 교수는 “1980년대에 좌편향 역사관을 지닌 제자들을 내보낸 데 회한이 많다”고 했다. 386 세대는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좌파적 운동이론과 역사관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시대의 불행을 체화(體化)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1980년대를 풍미했던 그 사관과 이론들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과 오늘날 북한의 참상을 보더라도 유효성을 상실했다.

386 역사학자와 전교조 교사들은 아직도 낡은 도그마에 집착해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어떤 통일이든 좋다’는 무모한 통일지상주의를 주입하고 있다. 이제 용기 있는 지성들이 386 사관의 오류와 시대착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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