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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간 희망 적다보니 ‘미래의 나’ 또렷해져”

입력 2009-02-16 02:58업데이트 2009-09-2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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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에 전시된 ‘나의 꿈’
서울 봉래초교는 2006년부터 졸업생들이 자기 소망을 타일에 적어 운동장 관람석 스탠드에 붙이도록 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기 꿈을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김재명 기자

‘부자되겠다’ 막연한 꿈 줄고 ‘자아실현-사회공헌’ 늘어나

1953년 미국 예일대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자기 인생에 얼마나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27%는 ‘아직 아무 목표가 없다’고 답했고, 60%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막연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10%는 ‘구체적인 목표를 항상 생각하고는 있지만 글로 남긴 적은 없다’고 했다.

‘꿈을 구체적인 글로 적어 간직하고 있다’고 답한 학생은 겨우 3%였다.

예일대는 20년 뒤 졸업생들을 추적했다. 구체적인 꿈을 글로 적은 학생 3%는 엄청난 재산가가 돼 있었고, 이 3%의 재산 총합이 나머지 97%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12일 열린 서울 봉래초등학교 100회 졸업식.

졸업생 125명이 한 명씩 차례로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생이 단상에 오르면 스크린에 졸업생의 사진과 함께 장래 희망이 소개됐다.

“박태환처럼 훌륭한 수영 선수가 돼 우리나라를 널리 알리겠습니다.”

“한식 요리사가 돼 세계가 감탄할 음식을 만들겠습니다.”

단상을 내려오는 졸업생들 손에는 졸업장과 졸업앨범, 그리고 ‘100일간의 행복여행’이라는 제목의 책이 한 권씩 들려 있었다. 책은 200쪽이 넘었다.

졸업식을 100일 앞둔 지난해 말 이 학교 6학년생들은 선생님들에게서 군데군데 빈 칸이 있는 책을 한 권씩 받았다.

이날부터 학생들은 책의 빈 칸에 하루에 두세 가지씩 자신의 꿈을 적어 나갔다.

빈 칸을 채워가며 학생들은 현재 돈 씀씀이, 인사성, 교우관계 등 사소한 것들까지 자기 자신을 되돌아봤다. 경호원, 의사, 백댄서 등 여러 직업에 대한 글을 읽고 자기와 얼마나 어울리는지를 글이나 그림으로 그리는 꼭지도 있었다.

책을 모두 채운 학생에게는 학교가 ‘인증서’를 줬다. 거의 모든 졸업생이 인증서를 받았다.

이명숙 교무부장은 “학생들에게 ‘좋아하면서 잘하는 것’을 찾아주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며 “교사가 어떤 방향을 설정하기보다는 학생 스스로 주제를 정하고 ‘내가 이 일을 하면 행복하게 살겠구나’ 하고 느끼는 일을 찾도록 도우려 애썼다”고 말했다.

꿈을 글로 적어 나가기 시작하자 학생들의 반응도 진지해졌다.

6학년 담임 백혜숙 교사는 “예전에는 장래 희망을 조사해 보면 ‘무조건 돈 많이 버는 일을 하겠다’는 답변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돈과 연관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사회공헌과 자아실현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학생들이 자기 꿈에 대해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고 글로 적어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기 미래를 설계하게 된 것이다.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이은주 양(12)은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의사가 돈을 많이 버니까 의사가 되고 싶다’고 썼다. 시간이 흐르며 이 양의 꿈은 구체화됐고 이유도 바뀌었다. 이 양은 책의 마지막 장에 ‘심장병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게 꼭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이 양은 “책에서 ‘행복한 삶’이라는 단원을 읽으면서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드러머를 꿈꾸는 이혜민 양(12)도 “평소엔 막연히 음악가가 돼야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통해 꿈이 정확하고 확실해졌다”며 “책 앞부분 ‘자아 이해’ 단원을 읽고, 앞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연주 전체를 조율하는 일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제는 드러머로의 꿈이 확실해졌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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