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수정]‘교통위반 사면’ 이후 사고발생 늘던데…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대규모 사면은 손해 보는 사람 없이 다수를 행복하게 해주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통념과 달리 잦은 사면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지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정보통신대 권영선, 한승헌, 남찬기 교수는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정책 효과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1995년 이후 2007년까지 네 번의 사면 조치로 발생한 경제적 비용이 적게는 3조6439억 원에서 많게는 5조5859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권 교수 등은 면허취소나 면허정지 상태에 있던 난폭 운전자들이 사면 후 운전을 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증가하는 교통사고 건수를 사회 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했다.

12, 13일 열리는 ‘2009 경제학 학술대회’에 발표될 이 논문에 따르면 사면이 있으면 그 후 1년 동안 평균 교통사고 건수가 평소보다 7265건, 사망자는 216명, 부상자는 1만1530명 증가하고 2년차에는 교통사고 건수가 1만1971건이 더 늘어났다.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은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처음 시행한 뒤 김대중 정부가 2번,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각각 1번 등 모두 5차례 시행해 2260만 명이 혜택을 봤다.

운전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서민에게 사면은 더없이 고마운 국가의 은전(恩典)이다. 하지만 권 교수는 “교통법규 사면의 주된 수혜자는 생계형 운전자가 아니라 승용차 운전자”라며 “인기영합주의 정책을 정부가 남발하지 못하도록 국회가 사면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조치가 일부 운전자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초래하고 막대한 사회 경제적 비용을 유발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평균 37.5개월마다 특별사면이 이뤄지면서 당초 의도와는 달리 상습 법규위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2007년 말 개정된 사면법에 따라 지난해부터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쳐 대상자를 선정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지난해 특별사면에서는 2회 이상 음주운전을 해 면허가 취소된 사람이나 무면허 음주운전자, 뺑소니 운전자 등은 제외됐다.

사면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어느 정도는 걸러지고 있지만 여전히 도로에는 추가 사면을 기대하고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거리의 난폭자’가 많다. 교통법규 위반과 사면의 악순환을 끊을 방법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신수정 경제부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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