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이야기 20선]<13>한국 문학과 문화의 고향을 찾아서

  • 입력 2009년 2월 10일 02시 59분


《“말의 뿌리를 밝히는 일은 우리 민족의 뿌리를 밝히는 일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의 문학과 문화를 통해서 민족의 정신적 고향을 찾아보고자 한 것이다. 이는 곧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도리도리 잠잠” 돌은 머리, 잠은 주먹

경희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평생 우리말의 뿌리를 찾기 위해 매달려 왔다. 국어학자이면서도 무속 전문가로 불릴 만큼 무속을 연구하게 된 계기도 무속인의 입을 빌려 나오는 신의 말(神語)을 통해 선조들이 썼지만 지금은 사라진 언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무속과 문학에서 찾은 우리말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다.

강원 강릉시에서 시준굿을 할 때 부르는 무가(巫歌)에는 ‘도술이 대단한 금강산의 스님과 동침해 아이를 낳은 아씨가 삼신할머니가 된다’는 삼신할머니의 유래가 담겨 있다. 시준굿은 ‘조왕(조王)과 성주, 삼신(三神) 등 가신(家神)을 모셔놓고 1년 동안 집안의 평안과 무병장수,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인 안택(安宅)을 할 때 부르는 무악(巫樂)’의 하나다.

시준굿의 내용을 보면 삼신의 ‘삼’은 삼줄(탯줄), 삼터(출생지) 등 태(胎), 생명, 출산의 뜻을 지니며 삼신은 ‘생명의 신’ ‘출산의 신’을 뜻한다고 한다. 몽고점은 새 생명의 탄생에 신이 난 삼신이 두들기는 손매에 아기의 엉덩이가 시퍼런 멍이 든 것이라고 여겼다.

저자는 신라 화랑(花郞)에도 무속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당나라 ‘신라국기’에서 화랑에 대해 ‘곱게 단장한 귀인의 자제’라고 표현하고 조선 중종 때 한자학습서인 ‘훈몽자회’에서 화랑을 격(覡·남자무당인 박수)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화랑이 여장(女裝) 박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화랑의 화(花)는 무속적인 면에서 사랑과 아름다움, 부활을 뜻하는데 신라 사람들이 화랑을 존경했다는 사실은 그 같은 종교적인 의미를 동경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흰색을 좋아한 우리 민족의 태양숭배사상과, 시조(始祖)들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의 관련성은 오래 전 ‘알’이 ‘해’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한다. 본래 ‘알의 자손’이라는 말이 ‘해의 자손’이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점차 ‘알’이란 말 대신 ‘해’를 의미하는 다른 말이 생겨나면서 후대인들이 알을 ‘난(卵)’으로 잘못 인식해 난생설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말에 옷, 밥, 떡, 김과 같이 말음(末音)에 자음이 붙는 폐음절어(閉音節語)가 많은 반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의 언어에는 모음으로 끝나는 개음절어(開音節語)가 많은 이유는 기후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했다. 폐음절어가 많은 이유는 추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입에서 공기를 내보내지 않기 위해서이며, 날씨가 따뜻한 남방계 언어가 개음절어 중심으로 이뤄진 까닭은 될 수 있으면 입에서 공기를 내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젖먹이 아이에게 시키는 ‘도리도리’와 ‘잠잠’은 옛말에서 기원했다. 도리의 어근인 ‘돌’은 머리(頭)의 뜻이며 잠잠의 ‘잠’은 주먹의 옛말이기 때문. 이 때문에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목운동을 시키며 도리도리라고 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도록 시키면서 잠잠이라고 얘기한다는 것이다.

쉽게 풀어썼다는 의미에서 부제에 ‘서정범 에세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우리말의 뿌리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무게도 연륜만큼 묵직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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