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경제 탐정]구조조정된 임원들 어디로 가나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임원 구직 이력서 5배 늘어

헤드헌터에 “잘 관리해달라”

정보기술(IT) 계열 대기업의 해외 법인 임원으로 근무하던 A(41) 씨는 지난달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룹 정기인사를 앞두고 저조한 실적으로 고민하던 그는 헤드헌팅 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어차피 구조조정 대상이 되느니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경쟁사는 헤드헌터에게 해외 마케팅 분야의 핵심인력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상태여서 15년간 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A 씨는 큰 어려움 없이 이직(移職)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경기불황으로 인건비 부담이 큰 임원들이 구조조정 1순위로 꼽히면서 A 씨처럼 이직하려는 임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이달 들어 삼성그룹이 전체 임원의 10%를 정리하면서 핵심 임원만 선별 영입하려는 경쟁사의 ‘표적 헤드헌팅’도 시작됐다.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외 기업의 본사 임원까지 국내 이직 시장에 가세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헤드헌팅 업체인 커리어케어 장혜선 이사는 22일 “최근 경기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전자 IT 업종 등을 중심으로 임원급 이력서가 평상시의 5배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일반 직원에 비해 고용이 불안한 임원들이 제 발로 헤드헌팅 업체를 속속 찾고 있는 것이다.

윤은라 솔루션 차장도 “불안감에 이력서를 들고 와 ‘관리를 해 달라’는 임원 고객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기업들도 이번 기회에 평소 욕심을 내던 핵심 인재를 영입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그룹이 전체 임원의 10%에 달하는 200∼300명의 임원을 내보내자 이들을 탐내는 경쟁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IT 업황 악화로 삼성전자 임원들이 대거 옷을 벗으면서 국내 굴지의 경쟁사가 헤드헌팅 업체에 특별 ‘오더’까지 낸 것으로 알려졌다.

장 이사는 “삼성이 지난해 임원 인사를 거의 하지 않은 데다 불황이 겹쳐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삼성 퇴직 임원이 이직 시장에 공급됐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경기악화로 인건비가 줄면서 경쟁 업체의 핵심 인재만을 골라 영입하려는 ‘표적 헤드헌팅’이 늘고 있다.

솔루션이 최근 거래한 대기업 B사의 경우 지난해 매출 호조로 헤드헌팅 비용으로만 10억 원이나 지출했지만 올해도 박사급 핵심 연구인력의 영입을 의뢰했다. B사의 최고경영자가 “위기 때 핵심 인력을 더 많이 확보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국내 헤드헌팅 업체인 엔터웨이파트너스는 최근 유럽 자동차 생산업체인 P사 본사에서 해외사업 담당 임원으로 근무한 프랑스인 L(47) 씨로부터 e메일로 이력서를 받았다.

L 씨는 중국 광저우(廣州) 등에서 근무한 아시아 지역 전문가로 20년간 P사에서 일하고 지난달 사표를 썼다. 세계 자동차 업계가 어려움에 빠지면서 P사는 지난해 74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도 추가로 35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L 씨는 이력서에서 영어, 중국어 실력과 함께 영업 경험을 강조하며 “자동차 업체 등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헤드헌팅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해외 글로벌 기업 본사에서 한국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수요는 거의 없었다”며 “외국인 임원들도 구조조정 여파로 눈높이를 낮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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