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재창]불량 국회의원 리콜하자

  • 입력 2009년 1월 5일 02시 57분


요즈음 부쩍 대의정치는 사양산업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면서 한글 타자기가 자취를 감췄듯이 머지않은 장래에 국회를 현대사 박물관에서나 만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의견이라고 흘려들을지 모르지만 이미 촛불집회가 그 가능성의 일부를 증명해 주었다. 더구나 ‘입법전쟁’에 이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총칼 대신 말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데 우리는 민주주의를 총칼로 하고 있으니 선진국 진입의 최대 걸림돌이 정치라는 어느 여론조사의 결과가 괜한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미성년자 관람불가’ 국회파행

거듭되는 국회의 파행이 요즈음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헌정 이래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보면 우리 정치의 숙명적 속성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한때 사람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위적으로 국회의원 출마자를 제한해 보기도 하고 선거를 통해 기성 정치인을 대폭 물갈이하는 일을 거듭해 보기도 했다. 우리처럼 현역 의원 교체율이 높은 나라도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미성년자 관람 불가’ 현상이 거듭된다면 해답은 단 한 가지다. 우리식의 대의정치에 부응하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해 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소환제는 이 시대의 정치적 수요에 가장 부합하는 대안 가운데 하나다. 국민주권의 구현을 위해 대의제를 통제하며, 대표에 의한 국가의사 결정권을 인정하되 적절치 않은 의사 결정에 대비해 국민주권의 방어기제를 따로 두자는 제도이다. 국회의원을 뽑아 국회로 보내는 일을 일종의 계약 체결로 보고, 임기 동안 국회의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는 약속을 전제로 유권자는 참정권을 국회의원에게 위임한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는다면 계약 기간 종료 전이라도 바로 그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 대상자를 찾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이다.

국민소환제를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베네수엘라 정도다. 그러나 한국 국회처럼 철저히 자기 역할을 외면하고 국민 대의기구가 사회 불신의 표적이 되는 사례도 흔치 않다. 외국의 경우 이런 제도도입의 필요성 자체가 처음부터 크지 않다. 또한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국가에서는 의회 해산으로 책임을 묻기 때문에 제도 도입의 필요성 자체가 없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국회의원의 임기가 확정되기 때문에 임기 종료 전 소환제도의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 중심제 국가의 대표 격인 미국에서는 하원의원의 임기가 2년이고 상원의원의 3분의 1을 2년마다 바꾸도록 한다. 짧은 임기, 잦은 선거를 통해 국민소환제에 대한 수요를 해소한다. 미국식 리콜제도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제헌헌법에 국민소환의 근거를 마련한 바 있었다. 제헌헌법 제27조는 ‘국민은 불법 행위를 한 공무원의 파면을 청원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여 국민소환제와 주민소환제의 근거를 제시했었다.

국민소환제로 헌정질서 회복을

5·16 군사정변이 발발하면서 이 근거 조항이 사라진 점을 감안하면 국민소환제 도입은 우리식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수요와 운영 환경의 개선 정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여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한 양식이기도 하다. 대의제도의 개발이 과거 소극적 참여에 자족하던 시민을 전제로 한다면 국민소환제는 적극적 참여와 생동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폭발적 수요에 조응하려는 제도다. 단순히 대의제도를 보완하자는 것 이상이며, 한국식 민주주의를 위한 창의적 대안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박재창 숙명여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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