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軍이 만든 첫 뮤지컬 ‘MINE’

  • 입력 2008년 10월 30일 02시 59분


캄캄한 밤, 수색대원들이 대대장 이 중령과 함께 비무장지대(DMZ)로 들어선다. 잠시 후 앞쪽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들린다.

김 상사=모두 엎드려!

이 중령=(달려가려는 병사를 밀쳐내며) 정신 차려 이 새끼야!

김 상사=지뢰 탐사병! 지뢰 탐사병!

이 중령=됐다. 내가 간다.

김 상사=대대장님. 위험합니다.

이 중령=위험하니까 내가 간다. 한 놈이라도 움직이면 나한테 죽는다.

이어 ‘쾅’ 하는 지뢰 폭발음이 다시 들린다.

국내 뮤지컬 팬들 사이에 현역 장병 39명과 민간 배우 6명이 등장하는 뮤지컬 ‘MINE(지뢰)’이 화제다. 2000년 6월 경기 파주의 DMZ 안에서 실제로 벌어진 지뢰 사고를 모티브로 군이 만든 첫 뮤지컬이다. 11월 23일까지 주요도시를 순회 공연한다.

주인공 이 중령은 현재 육군대학 교관인 이종명 대령이 실제 인물. 그는 지뢰 사고 후 의족에 의지하고 있다. 인기 가수 출신인 안칠현(강타) 일병과 양동근 이병이 출연해 청소년층엔 더욱 인기다. 출연 장병들은 입대 전 주로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했다.

극중에서 이 중령은 발레리나였던 부인을 교통사고로 사별한 뒤 아들(안칠현) 문제로 고민한다. 아들은 어머니가 병원에서 숨질 때와 제삿날에도 나오지 못한, 군대만 생각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증오를 키운다. 무용 콩쿠르에서 우승해 군대를 면제받고 유학 갈 생각에만 차 있다. 춤꾼의 길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의 군 입대 권유에 거세게 반발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지뢰 사고에도 아랑곳없이 결국 영국 유학을 택한다.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군 정복을 입혀주는 것으로 마지막 성의를 보인다. 이 중령은 휠체어를 타고 쓸쓸히 훈장 수여식장으로 향한다. 영국으로 떠난다던 아들이 갑자기 아버지 앞에 나타난다.

아들=(거수경례를 하며) 충성! 아버지의 아들 이은호는 대한의 아들로서 군 입대를 명(命) 받고 떠납니다.

이 중령=(감격에 찬 목소리로) 은호야!

아들=아버지! 사랑합니다!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안는다)

‘아름다운 우리의 내일’이란 장병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면서 뮤지컬은 절정에 이른다.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할 수 있을 때/사랑할 수 없는 걸 사랑할 수 있을 때/그때가 비로소 완전해지는 것/그것이 바로 우리의 내일이 될 거야/그것이 우리의 내일이 될 거야.”

지난 주말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5차례 공연 때 1200여 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박수와 눈물로 찬사를 보냈다. 이 중령 부자(父子)의 악화된 관계를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된 무용팀 친구 봉태(양동근)와 이 중령의 순직 부하가 남긴 딸 유리의 연기도 볼만했다. 민간 뮤지컬에선 볼 수 없는 DMZ 철조망 및 수색 장면과 실감나는 총기 및 헬리콥터 음향, 지뢰 폭발음도 긴박감을 더해줬다. ‘MINE’은 민(民)과 군(軍)의 감성적 고리를 이어주는 듯 깊은 여운을 남겼다.

작품을 기획한 육군본부 문화영상과 이영노 중령은 “장병들이 수준 높은 공연을 즐기고 정서를 함양하는 것이 정신 전력(戰力)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예술부대 창설이 꿈이라고 말했다. 공연 횟수를 늘려달라는 팬들의 요구가 빗발치지만 군 당국은 사용 가능한 뮤지컬 무대가 한정돼 있어 안타까워하고 있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