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감 커질수록 문 열어야”

입력 2008-10-13 02:55수정 2009-09-24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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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인문학자대회에 참석한 미국 코넬대 사카이 나오키 교수(왼쪽)와 성태용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학단장이 인문학의 위기와 해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12일 폐막한 ‘2008 인문주간’ 행사 중에서 ‘제1회 아시아인문학자대회’가 가장 주목받았다. 한국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인문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문학의 아시아적 가치 등을 논의했다.

이 대회에서 특별 강연한 미국 코넬대의 사카이 나오키(아시아연구과) 교수는 동아시아 사상사 분야의 석학으로 국가와 민족의 동일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 비판해 왔다. 국내에서는 한양대 임지현 교수와의 대담집 ‘오만과 편견’을 비롯해 ‘번역과 주체’ 등이 번역돼 있다. 이 대회를 주최한 한국학술진흥재단 성태용(건국대 철학과 교수) 인문학단장이 9일 사카이 교수를 만나 인문학의 위기와 아시아 인문학자 교류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성=근원적인 질문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인문학(humanities)이란 단어는 라틴어로 ‘인간다움’을 뜻하는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됐습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카이=후마니타스를 말하려면 안트로포스(anthropos·태초의 인류를 뜻하는 말)를 얘기해야 합니다. 라틴어 후마니타스에 대응하는 말이 그리스에서 온 안트로포스인데 여기서 인류학(anthropology)이란 말이 나왔지요. 과거 서양에서는 안트로포스가 배운 사람을 지칭했고 인류학은 지식인을 위한 학문이었습니다. 반면 후마니타스는 지식인뿐 아니라 일반을 위한 학문이지요. 후마니타스 인문학은 자기를 성찰하고 변형하고 비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돼 버렸습니다. 대학에서도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줄고 있습니다. 대학이 사회에서 쓰일 수 있는 학문에만 힘을 기울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동아시아만의 현상인가요.

▽사카이=인문학의 위기론에 동의합니다.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역사적으로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 공간을 제공해 왔는데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어요.

▽성=인문학자들이 학문 자체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실과의 소통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단도 한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카이=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인문학의 비평 전통이 약화되고 있어요. 그렇다고 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서 인문학이 부흥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실용 지식의 필요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인문학이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성=인문학 부흥을 위해 초국가적인 학자들의 협력이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인문학의 위기 타개 방안에 대해 고민하신 게 있으신지요.

▽사카이=일본학자로 말씀드리면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의 인문학자에게 한국은 먼 존재였습니다. 일본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한국과 한국 역사가 핵심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와 균형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일본의 근대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성=조금 거친 질문을 드립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아시아인문학자대회를 열자고 했던 이면에는 학문적으로 미국과 서양의 주도에 끌려가는 방식을 떠나 문화 역사 지역적으로 가까운 공간인 아시아의 학자들이 공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제시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주도적으로 나서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한국이 아시아를 친구로 엮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번 대회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사카이=아시아 인문학 교류에서 한국이 생산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서구와 아시아의 분열을 조장하면 과거 서구에서 후마니타스와 안트로포스를 이분화했던 것처럼 인문학을 갈라놓는 구조가 재생산될 위험도 있습니다. 학술 교류는 중요하지만 그런 교류가 아시아 내에서 배타성을 띠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학문은 외부에 문을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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