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홍규]人材는 없는 게 아니고 숨어 있을 뿐

  • 입력 2008년 8월 15일 02시 56분


1997년 11월 우리 국민은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 같은 황당함을 느껴야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다시 비슷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 경제에도 물가 고용 경상수지 등 모든 지표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87%에 이르는 640조 원의 가계대출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 되어 목줄을 누른다. 문제는 이를 해결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믿을 만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으니 국민은 정말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돌이켜보면 1997년도 그랬다. 위기 발생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대내적으로 보면 한마디로 우리가 가진 시스템의 실패였다. 정확히 말하면 인식 지식 제도 리더십의 네 가지 실패가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다시 네 가지 실패의 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동남아에 전염되는 외환위기를 보면서도 우리의 위기 가능성에는 눈감으려 했던 인식의 실패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보며 우리 가계대출은 괜찮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반복되는 게 아닐까. 헤지펀드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부족했던 지적 역량이 지금은 과연 금융위기가 닥쳐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아졌을까. 이익집단의 압력으로 비효율적 제도와 관행이 지속되는 제도적 실패가 지금 공기업 정부규제 지역발전 문제에서 반복되고, 리더십의 실패가 촛불정국에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이다. 위기의식은 낮고, 위기관리 능력은 나아진 것이 없으며, 비효율적 제도와 관행은 지속되고, 리더십은 심각히 훼손됐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현재의 위기가 모두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현 정부의 책임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위기를 막아낼 수 있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주고 있느냐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경제적 위기는 대통령에게 정치적 기회일 수 있다. 위기가 다가오면 국민은 논쟁을 접고 단합하기 마련이다. 지금과 같이 정책효과의 상반관계로 정책대안을 쉽게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국민적 단합과 고통 분담의 노력이 위기 예방의 출발점이 된다. ‘위기감이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누가 구슬을 꿰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미우나 좋으나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에게 위기 극복을 호소하려면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지금 과연 새로운 신뢰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정부를 믿으려면 우선 정부 내에 믿을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재난을 겪었던 세종대왕이 황희를 찾아내고 당태종이 위징을 쓰듯 이 대통령도 인재를 찾아내야 한다. 인재란 없는 것이 아니고 숨어 있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코드 인사로는 세상에 나오려 했던 인재도 다시 숨을 것이다. ‘중용’에서는 어진 왕만이 어진 신하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인재가 없다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현려(賢慮)와 노고의 부족을 탓해야 한다.

인재 1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수많은 관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서다. 아무리 위에서 들볶는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는 법이다. 리더십이란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한비자’에 이르기를 ‘임금이 지혜를 버려야 신하를 바로 살피는 총명을 얻게 되고, 현명함을 버려야 신하들이 저마다 능력을 발휘하여 공적을 세우게 된다’는 얘기는 이를 말한다.

이홍규 한국정보통신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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