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하루 8명만 이용하는 공항 기업인 귀빈실

  • 입력 2008년 5월 28일 03시 01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의 대표는 귀빈실을 이용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항공사에서 알아서 의전을 해주는 기업인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정부가 공항 귀빈실을 이용할 수 있는 기업인 400명을 선정했을 때 탈락한 중소기업 K사 박동주(48) 사장이 불만 섞인 목소리로 한 말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귀빈실은 어떻게 이용되고 있을까. 25일 오후 5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2층 기업인 귀빈실을 찾았다.

280m²(85평)나 되는 기업인 전용 라운지는 텅 비어 있었다. 오후 내내 찾는 기업인이 없었다.

이날 이용한 기업인은 문을 닫는 시간인 오후 10시까지 모두 아홉 명. 오전 6시 반부터 직원 여섯 명이 교대로 근무한다. ‘물(직원) 반 고기(귀빈) 반’이다.

귀빈실을 찾는 기업인은 하루 평균 10명이 안 된다. 지난달에는 하루에 12, 13명이 다녀갔다. 5월에는 26일까지 203명이었다. 하루 평균 7.8명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급 인사만 사용하는 귀빈실을 기업인에게 개방하는 게 좋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면서 귀빈실이 생겼다.

너무 많이 개방하면 혼잡하니까 적정 인원만 선정하겠다며 국토해양부가 제시한 인원이 1000명.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라고 당시 실무자가 설명했다.

수출과 고용 실적을 따져 기업인 400명에게 우선 개방됐다. 6월에 600명이 추가되면 모두 1000명이 이용할 수 있다.

귀빈실 이용자로 선정된 기업인은 별도의 카드(CIP 카드)를 받는다. 이 카드를 보여주면 장관급 인사가 다니는 통로로 출국 수속을 할 수 있다.

기업인이 출국 전에 편하게 쉬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귀빈실을 만든 원래 취지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 하는 점이다.

대통령은 출입국에 들이는 번거로움과 시간 낭비를 줄여서 기업인을 돕겠다는 마음이었을 게다. 1분 1초라도 아껴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힘쓰라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데 신경을 너무 쓰다 보니 귀빈실이 텅 비게 생겼다. 이쯤 되면 주객이 바뀐 셈이다.

귀빈실을 딱 한 번 이용한 H사의 대표는 “쾌적한 귀빈실을 생각하다 보니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기업인의 시각에선 낙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제도와 시설을 만들기로 했으면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김동원 사회부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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