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비밀 쥔 사리공을 찾아라”

  • 입력 2008년 5월 7일 02시 54분


■ 동아시아 最古 목탑 터 추정 경당지구 발굴현장

“돌 하나, 흙 한 줌 조심스럽게 다뤄 주세요. 이곳에서 사리가 나오면 역사 교과서에 수록될 겁니다.”

2일 한신대 박물관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가 작업 중인 인부에게 농담을 건넸다. 인부가 파고 있는 곳은 찰주(擦柱·탑 중앙의 기둥)를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크고 작은 돌이 땅 속 깊은 곳까지 가득 채워져 있다.

이곳은 지금까지 한성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의 연못이나 건물 터로만 생각돼 왔다. 그런데 8년 만에 발굴을 재개한 지 한 달 반이 지난 4월 중순 발굴팀은 예상치 못한 흔적을 발견했다. 건물 터 한가운데서 기둥을 세운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나온 것이다.

“목탑 터가 아닐까.” 권 교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곳이 목탑 터라면 한반도 최초이자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 터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고고학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곳.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 현장을 7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현장설명회에 앞서 2일과 5일 두 차례 찾았다.

○ 목탑 증거 심초석과 사리공은 어디에?

현재 목탑 추정 유적에선 심초석(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과 사리공(사리함과 사리병을 넣는 공간)을 찾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심초석과 사리공은 이곳에 목탑을 세웠다는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이다.

발굴팀은 찰주 터로 추정되는 흔적을 집중 발굴하고 있다. 권 교수는 “이곳에서 심초석이나 사리공 또는 탑의 안전을 빌며 묻은 도자기 귀금속 공예품 등 진단구나 공양구 유물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목탑 터라면 금당은 어디에?

목탑은 사찰 터의 증거다. 그렇다면 금당(사찰의 본당) 터는 어디 있을까. 초기 사찰은 일주문 목탑 금당 강당 등이 일직선상에 있었다. 그래서 2000년 발굴 당시 목탑 추정 터 북쪽에서 발견된 여러 개의 기둥 구멍 흔적으로 금당 터를 추정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당시에는 이곳이 목탑 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기둥 구멍 흔적에 주목하지 못했다”며 “목탑 터 북쪽 끝에서 또 다른 건축물 흔적이 발견돼 이 흔적과 연결되는 기둥 흔적들이 금당 터가 아닐까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왕성 안에 사찰이?

학계는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봐 왔다. 왕성 안에 사찰이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날 발굴 현장을 찾은 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목탑 추정 유적은 풍납토성의 중앙에 있다”며 “이곳은 백제 왕실이 불교를 받아들여 공인한 뒤 전파하기 위한 핵심 기능을 담당한 왕실 사찰일 것”이라고 말했다.

목탑 추정 유적에선 가야 토기 조각도 발견돼 주목된다. 권 교수는 “동진에서 수입된 중국 도자기 조각들도 발견된 바 있어 이곳이 활발한 국가 교류가 이뤄진 초기 백제의 도읍지가 유력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고유신앙에서 불교로 변해가는 역사적 현장?

목탑 추정 유적 북쪽에는 2000년 백제 왕실의 제사 터로 보이는 ‘여(呂)’자 모양의 건물이 발굴됐다. 현재 제사 터 남쪽에서는 제사 때 사용한 뒤 폐기한 것으로 보이는 동물 뼈들이 발굴되고 있다. 불교 전래 이전 백제 고유 신앙의 흔적들이다.

불교 사찰과 백제 고유 신앙의 흔적이 함께 있는 셈이다. 제사 터와 동물 뼈 폐기 터는 3세기경의 유적이고 목탑 추정 유적은 4세기 말∼5세기 초의 유적. 권 교수는 “불교 전래 이전 고유 신앙의 중심지가 왕실 불교의 중심지로 변한 셈”이라며 “백제가 고유 신앙을 폐기하고 새로운 종교인 불교로 이행하는 역사적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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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취재 : 윤완준 기자


▲ 영상 취재 : 윤완준 기자


▲ 영상 취재 : 윤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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