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경찰 믿고 어떻게 아이 키우나

  • 입력 2008년 3월 31일 22시 54분


안양 초등학생 2명 납치살해 사건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열 살짜리 여자 어린이가 납치될 뻔했다. 폐쇄회로(CC)TV에 찍힌 얼굴이 공개되면서 범인이 검거되긴 했지만 범행 발생 직후 경찰의 초기대응에는 비난받을 점이 많다.

이 어린이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40, 50대 용의자에게 흉기로 위협당하고 마구 얻어맞으면서도 끝까지 저항해 다행히 피랍을 모면했다. 여아가 성도착자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거나, 유괴범죄의 대상이 되는 일들이 잇따라 일어나는 판이라 또래의 딸아이를 둔 부모들은 다시 한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고를 받고도 즉시 수사를 벌이지 않고 귀찮은 일처럼 처리했던 이런 조직에 치안을 맡겨야 하는지 분노가 치민다. 관할 지구대의 보고를 받은 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폭행사건으로 취급했다. 폭행 장면이 찍힌 엘리베이터 CCTV 화면과 달아나는 용의자를 봤다는 이웃집 주민의 증언도 무시했다. 경찰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불안한 피해 어린이 부모와 아파트관리사무소는 CCTV 화면으로 용의자 수배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며 자구(自救) 활동에 나섰다.

더욱이 범행은 경찰이 26일 오전 ‘아동·부녀자 실종사건 종합 치안대책’을 발표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인 당일 오후 발생했다. 2월 새로 부임한 어청수 경찰청장은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를 슬로건으로 만들어 전국 경찰서에 붙였다. 전시용 구호만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은 대형 사건이 터져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질 때마다 예산타령을 하면서 막대한 돈과 인력을 끌어다 쓰는 데 이력이 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치안 서비스의 질이 개선됐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찰총수들이 내건 구호가 모두 실천됐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교도소가 문을 닫았을 것이다. 거꾸로 국민이 체감하는 치안 불안지수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현실이다.

쥐 잡는 일을 귀찮아하는 고양이를 집안에 기를 필요가 없듯이 범죄예방에 무심하고 범인 안 잡는 경찰 조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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