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카페]1만km를 날아온 명함 한장의 의미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뒤늦게나마 이 편지와 함께 제 명함을 보냅니다. 그날의 결례를 양해해 주세요.”

지난주 제 앞으로 독일 귀테르즐로(G¨utersloh)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편지 겉봉에는 독일의 명품 가전기업 ‘밀레’의 로고가 있었습니다.

봉투를 뜯어 보니 편지와 함께 한 장의 명함이 들어 있더군요.

편지를 보낸 사람은 지난달 한국에서 열린 밀레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만난 밀레 독일 본사의 마르틴 멜처 마케팅 본부장이었습니다. 간담회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죠. 이어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저는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가 직접 쓰고 사인을 한 이 편지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행사장에서 명함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제 것을 드리지 못해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야 제 명함을 보내게 돼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상황이 이해되더군요.

당시 멜처 본부장은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순회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한국 기자간담회에서 명함이 다 떨어져 기자의 것을 받기만 한 일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하루에 여러 사람을 만나 명함을 주고받는 기업 임원이나 기자들 사이에선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나중에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보통은 인사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그래도 서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하죠.

그래서인지 작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행기에 실려 1만여 km를 날아온 명함은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가전업계의 ‘벤츠’로 불리는 109년 역사의 밀레는 비싸지만 질 좋고 오래가는 가전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입니다.

특히 모든 애프터서비스를 12시간 안에 해결하고, 단종(斷種)된 제품의 부품도 20년(밀레 제품의 평균수명) 넘게 보관하는 철두철미한 프리미엄 고객 서비스로 정평이 나 있죠. 어쩌면 제가 받은 이 한 장의 명함은 오늘의 밀레를 만든 명품 기업의 마케팅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우선 기자 산업부 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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