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경선 집어삼킨 ‘공천 드라마’

  • 입력 2008년 3월 17일 20시 19분


여야 공천 작업이 거의 끝났다. 예년에 비해 물갈이 폭이 크다. 한나라당은 텃밭인 영남권에서만 절반에 가까운 현역 의원들이 탈락했다. 서울에서도 다수의 중진들이 고배를 마셨다. 통합민주당도 전체적으로 큰 폭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이로써 공천은 개혁된 것인가. 해서, 우리는 4·9총선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쇄신의 의지는 긍정 평가할 만하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누가 뭐래도 개혁 공천의 요체는 상향식에 있다. 밑에서부터 당원들의 의사가 모아져 후보가 결정돼야 한다. 이번 공천에서는 이런 과정이 철저히 무시됐다.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가 전권을 행사했다. 과거 양김(兩金)의 제왕적 역할을 공심위가 대신했을 뿐이다.

이건 명백한 정당정치의 후퇴다. 2004년 총선 때만 해도 여야 합쳐 99개의 지구당에서 경선을 통한 상향식 공천이 이뤄졌다. 기억할지 모르나 이보다 훨씬 앞서 1960년 7월 29일 제5대 총선 때도 상향식 공천이 시도됐다. 지구당별로 15명 내외의 상무위원이 복수의 후보를 뽑아 올리면 중앙당이 최종 결정했다. 상무위원들을 매수, 납치하는 부작용이 있긴 했어도 반세기 전에 벌써 이런 개혁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상향식 공천도 ‘돈 경선’ ‘동원 경선’ 등 폐해가 적지 않다. 현역 의원들, 특히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텃밭 지역 의원들이 경선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이번 공천에서 경선 문제가 거론조차 안 된 것은 대선 후 곧바로 열리는 총선이어서 시간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여야 모두 내심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더 크다.

兩金을 대신한 공천심사위

그 결과가 중진들의 대거 탈락이다. 번거롭고 귀찮아서 경선 없이 가려고 하다가 공심위라는 뜻밖의 ‘괴물’을 만난 것이다. 파출소를 피하려다 경찰서로 들어간 꼴이다. 경선만 제대로 됐다면 탈락자 중 많은 수가 공천을 받았을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2배, 3배 앞서는데 왜 낙천이 됐겠는가. 이런 점에서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이제라도 상향식 공천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여야가 함께 나서야 한다. 당원들의 참여문화가 성숙되지 않았다고 망설일 일이 아니다.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고치면 된다. 언제까지 진성당원 타령만 할 건가. ‘차떼기 동원’이 걱정되면 차떼기가 안 통하는 첨단 전자투표 방식을 마련하면 될 일이다. 명색이 ‘디지털 강국’에서 그게 뭐가 어렵겠나. 지구당 당원들이 2배수, 3배수로 1차 후보를 뽑은 후 중앙당과 협의해 최종 낙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에 공천 관문을 통과한 정치 신인들도 경선은 소중한 제도라는 인식을 갖고 경선의 제도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년 후, 8년 후 그들 역시 제2의 공심위, 제3의 공심위에 의해 하루아침에 정치생명이 끊길 수도 있다. 생각하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14일 새사회전략정책연구원(KINS·원장 정종섭)이 주최한 총선 심포지엄에서 김용호(정치학) 인하대 교수가 공심위를 가리켜 “한국이 특허를 갖고 있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정치제도”라고 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낯 뜨거운 일이다.

경선을 안 하다 보니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무소속 출마나 당적 바꿔 출마하기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심각한 공천 후유증으로 정책은 뒷전인 채 공천 시비가 이번 총선의 쟁점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픈게임에서 누가 이겼느냐, 졌느냐가 메인게임의 주된 이슈가 될 판이다. 경선을 치렀더라면 이런 일들은 걱정 안 해도 좋았을 것이다. 공직선거법(제57조)은 경선 결과에 불복한 사람의 출마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했다면 중진들 살았을 것

공심위에 의한 공천은 결국 국민에게 차선의 선택을 강요한다. 공심위에서 선택한 사람만 찍으라는 것인데 국민은 그가 과연 내 지구당을 대표할 만한 인물인지, 믿을 수는 있는지, 능력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심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졌는지조차도 알 길이 없다.

상향식 경선의 제도화는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조금씩 고치고 보완해 가는 것이 정치 발전이다.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당원과 유권자들의 의식도 바뀐다. 괴물 공심위의 ‘공천 드라마’는 이번 한 회로 충분하다. 4년 후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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