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옮길 부처 제비뽑기로 정한 기막힌 공무원들

  • 입력 2008년 3월 17일 02시 53분


정부 조직 개편 작업이 막판이던 지난달 말.

통폐합이 결정된 해양수산부 산하 군산지방해양수산청 소속 기능직 공무원 11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비뽑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해양부 업무가 국토해양부(물류, 해양, 환경)와 농림수산식품부(수산)로 나뉘게 되자 해양부 직원 대부분은 국토해양부를 지망했다. 반면 농림수산식품부에는 관심도가 떨어졌다.

결국 양 부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들어 있는 함(函) 속에서 각자 하나씩의 제비를 뽑아 갈 곳을 결정했다. 제비뽑기 결과에 따라 국토해양부로 8명, 농림수산식품부로 3명이 가는 것으로 결정됐고, 정식 인사 발령도 났다. 전문성이 아닌 제비뽑기로 부처를 정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다.

감사원은 이를 암행 직무 감찰에서 적발해 해양부에 즉각 추첨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또 다른 부처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3주 동안 암행 직무 감찰도 벌였다. 그러나 추가 사례는 적발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16일 “지원자가 ‘힘 있는’ 부처에만 몰리니 제비뽑기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명확한 인사이동 기준이 마련되지 않자 근무지 배치를 두고 발생할 수 있는 잡음과 불만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평한’ 제비뽑기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국토해양부 측에선 이런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해양부 관계자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정부 조직 개편으로 뒤숭숭해 지방까지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고, 특별한 지침이 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관가가 어수선하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공무원 3427명 감축안’이 예고돼 있고, 부처별 후속 인사가 진행 중이거나 코앞에 와 있다. 2, 3개 기관이 통합된 거대 부처 내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감원 대상자를 선별하는 기준은 아직 없다.

이명박 정부가 정부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은 ‘작은 정부’ 실현이 목적이었다. 방만하게 확장해 온 공직의 외형을 줄이려면 지금이라도 공직의 기능을 재검토해야 한다. 분명한 원칙이 서야 ‘강소(强小) 정부’가 연착륙할 수 있다.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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