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무자 3명 입건하고 잊혀지는 숭례문 화재

  • 입력 2008년 3월 12일 02시 59분


국보 1호 숭례문이 어처구니없는 방화 때문에 무너져 내린 지 한 달 만인 그제 경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방화범 채 모 씨 구속에다 서울 중구청 5급 이하 실무 공무원 3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문화재청과 서울시청 직원 등 10명을 징계하도록 소속 기관에 통보한 게 전부다. 경찰이 관련자들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문화재 방재(防災) 매뉴얼도 없었고 관리책임 소재를 분명히 규정한 법규가 없었기 때문이다.

600여 년 세월 동안 몇 차례 전화(戰火)도 견뎌낸 자랑스러운 민족 문화유산이 불타버린 참화를 이렇게 마무리한다면 문화민족으로서 자격이 모자란다. 화재 직후 수많은 사람이 현장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반짝 흥분했다가 곧 잊어버리는 ‘냄비 체질’로는 숭례문 화재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없다. 서울시가 시내 목조 문화재 136곳의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한 결과 17%에 해당하는 23곳에서 경비 인력과 방재 및 방범 시설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2, 제3의 숭례문 화재가 걱정된다.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문화재도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CCTV를 추가 설치해야 할 곳이 많다. 목조 건물만 140채가 있고 외벽 둘레가 4km나 되는 창덕궁의 경우 아직도 CCTV가 2대뿐이며 경찰차가 2시간에 한 번씩 순찰을 도는 게 고작이다. 지방과 깊은 산중에 있는 문화재의 방재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문화유산 방재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한다. 문화재 관리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사후 책임을 묻기 어려운 관련 법규는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가릴 수 있도록 고쳐야 할 것이다.

아울러 대형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전국의 산업공단과 농공단지에 대해서도 재발방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재로 소량이나마 페놀이 유출된 ㈜코오롱 김천공장의 경우 회사 측의 피해 최소화 노력이 돋보였다. 새 정부는 이런 사례를 참고해 화재 유형별 예방 및 대처 매뉴얼을 만들고 산업단지의 취약점을 조사해 완충저류조 설치 등 종합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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