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지문]새내기여, 知的탐험을 즐겨라

  • 입력 2008년 3월 3일 03시 00분


일본에서는 학술회의나 석학 강연회를 입장료를 받고 일반에 공개하는 일이 적지 않다. 2000엔(약 1만8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와서 경청하며 메모를 하고 진지한 질문을 하는 화이트칼라 청중이 꽤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서 학술회의를 조직하면 청중 동원에 오히려 더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에게 와 달라고 사정을 하고 학생을 강제로 동원하고, 때로는 ‘차비’를 주면서 청중을 사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국민의 지적인 격차가 점점 커지지 않을 수 없다.

학문하는 쾌감이 가장 짜릿

우리의 대학생들은 지적인 탐구가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즐겨 듣는 과목이라도 출석을 안 부르는데 꼭꼭 출석하면 따분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학생도 많다. ‘입시지옥’의 부작용이지만 슬프고 암담한 일이다. 그러나 지적 탐구의 즐거움은 다른 어떤 쾌락보다도 강렬하고 짜릿하고 지속적인 즐거움이고, ‘지식’이라는 소득 말고도 안목과 인격의 성숙이라는 부수적 혜택도 준다.

1960년대 후반의 나의 대학시절과 비교하면 오늘의 대학 신입생들 앞에 펼쳐질 향연은 눈부시게 다양하고 화려하다. 첨단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교수진의 다양한 강의는 물론, 하루에도 몇 개씩 열리는 석학과 해외 유명 교수 초청 공개강연, 각종 학술 세미나, 학생들의 다양한 동아리 활동, 배낭여행과 해외연수의 기회, 기업체나 공공기관의 인턴십 등 몸이 한 개뿐이어서 다 섭렵할 수 없는 지성의 향연, 체험의 장이 지천으로 그들 앞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수혜자인 학생들은 이 풍성한 향연에 냉담하고 무관심하다. ‘너무 빨리 약아진’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불행했던 우리 세대보다 더 약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모 세대만큼은 아니었어도 우리 세대 역시 빈곤을 경험하고 목격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성과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지적인 탐구를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경제대국이면서도 자주 위기감에 휩싸이는 것이 이로 인한 정신적 빈곤 때문이다. 작금에 여러 고위공직자 후보가 과도한 재산 때문에 사퇴하거나 낙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왜곡된 가치관 때문이었다.

이제는 능력 있는 사람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아직 많은 사람이 금전의 신의 손아귀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다. 인생에는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보람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특히 지적인 열정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인생은 끊임없는 모험이고 세계는 무궁무진한 향연장이다.

젊음을 지성의 향연에 빠뜨리자

천체의 비밀, 인간의 본질, 생존 조건 및 의식과 관습의 관계, 생명의 원리, 역사의 무수한 아이러니와 반전, 예술에 담긴 인간의 감정과 사상, 기타 무수한 학문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흥미롭지 않은 것이 있으며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있는가? 21세기에는 지성의 편력이 풍부한 사람이 인생을 흥미롭고 여유롭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어 필사적으로 치부를 한다고 해서 우리 조상들이 가난 때문에 겪은 수난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인 부의 추구로 사회의 불화와 분열을 초래하는 것은 오히려 필사적 노력으로 가난을 탈피했던 선조들을 모독하고 배반하는 것이다. 오늘의 대학 신입생들이 그들 앞에 펼쳐진 지성의 향연장의 현명한 손님이 된다면 멋진 인격자, 빛나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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