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34년 푸이, 만주국 황제 취임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2분


1934년 3월 1일 중국 최후의 황제 푸이(溥儀)가 만주국 황제로 취임했다. 중화민국 총통 위안스카이(袁世凱)에 의해 청나라 황제에서 강제 퇴위당한 지 22년 만이었다.

만주국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었다. 중국 침략 기지로서 일본 관동군이 만든 나라였으며 실권도 관동군에게 있는 ‘괴뢰국’이었다. 푸이는 단순한 허수아비 황제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중국 공산당에 전쟁포로로 넘겨진 그는 오랜 옥중 생활 끝에 1959년 특사로 풀려나 정원사로 일했다. 1964년에 중국 공산당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으나 이듬해 사망할 때까지 그는 철저히 잊혀진 존재였다.

푸이가 만주국의 황제로 즉위한 내막은 중국 현대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됐지만 신해혁명을 겪고 군부와 일제의 괄시를 받으며 눈칫밥을 먹어온 그가 허수아비 황제로 이용될 것을 몰랐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납치되었다는 설, 중국 혁명세력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설, 일본인의 환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는 설 등이다. 푸이의 영국인 교사 레지노 플레밍 존스턴은 “푸이는 원래 영국이나 미국으로 유학 가고자 희망했으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본인들과 가까워졌다. 만주에 간 것은 스스로 원해서 내린 선택이다”라고 회고했다.

비록 객관성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푸이 자신이 중국 공산당의 조사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일본인들은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고 난 그들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인 수십 명이 내가 머물고 있는 거처로 찾아와 포위했다. 난 시종들에게 탈출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했으나 그들에게 끌려 나갔다. 자동차로 5일을 달려 도착한 곳은 만주의 허허벌판이었다. 그때서야 날 끌고 가는 목적을 알았다.”

결국 중국 황제로 복귀하려던 구상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으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본인들에 의해 굴러가는 정사를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의 동족인 만주인들이 일본군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할 때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스스로 지킬 힘을 갖추지 못한 황제는 비참했다. 어느 한 곳 의지할 데 없이 일제의 전횡을 막아낼 힘을 지니지 못했던 구한말의 고종도 마찬가지였다. 힘없는 나라의 황제가 이럴진대 백성은 어떠했을지….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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