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비서 블로그의 추억

  • 입력 2008년 3월 1일 03시 01분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비서는 얼굴도 없고 입도 없다”며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의 비서진 블로그를 없앴다. 29일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정책 개요, 발표문, 보도 자료가 주를 이루었다. 노무현 청와대의 비서들이 경쟁적으로 올렸던 논평이나 개인 의견은 자취를 감췄다. 이런 변화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화제가 되는 것은 노 정권의 청와대 비서들이 정제되지 않은 말과 글을 쏟아내 국정을 어지럽힌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2005년 10월부터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별 블로그를 만들어 정권 홍보, 비판 언론 및 야당 공격에 매달렸다. 대통령 보좌라는 본업보다 관제(官製) 칼럼니스트로 행세하기 바빴다. 청와대 홈페이지뿐 아니라 싸이월드 청와대 홈피, 네이버 청와대 블로그, 다음 청와대 카페 등 인터넷 곳곳을 누비며 대통령의 나팔수 또는 전사(戰士) 노릇을 했다. 다른 민주국가의 지도자 비서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괴한 행태였다. 이를 부추긴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낯 뜨거운 일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브리핑 편집 회의를 주재하고 댓글을 달고 국정 브리핑에 기고하는 공무원에게 승진 가산점까지 주었다. 충성 경쟁에 혈안이 된 공무원들은 자료 및 기사 조작에다 허위 인터뷰를 싣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지켜보다 못한 누리꾼들이 국정 브리핑 안티 사이트인 ‘걱정 브리핑’을 개설했을까.

‘1인 미디어’라 불리는 블로그는 보통 국민이 자기 생각을 간섭받지 않고 털어놓는 열린 공간이다. 언론의 감시를 받아야 할 살아있는 권력자들이 정권의 코드를 기준 삼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세력을 공격하는 것은 1인 미디어의 오용이다. 권력이 스스로 언론을 자처한 일은 세계 언론사에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남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사람들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언론의 비판을 입에 쓴 약으로 생각하고 수용할 것은 흔쾌히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언론이 정말 근거 없는 비판을 한다면 반론권을 요구하는 등 적절히 대응하면 된다. 혹여 ‘비서는 얼굴도 입도 없다’는 말로 세상과 담을 쌓고 귀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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