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건영]민영 의료산업 키워 일자리 늘리자

  • 입력 2008년 2월 5일 03시 00분


저성장과 실업.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을 압축 표현하는 두 단어다. 197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거듭해 온 제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학계와 재계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고용 창출의 돌파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의료서비스의 산업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의료 산업은 서비스 산업 가운데 경쟁력을 갖췄으면서도 산업화가 이뤄지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의료서비스 산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제조업의 3.3배인 노동집약적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미국의 영리병원인 컬럼비아HCA는 매년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과 맞먹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이미 과감한 규제 철폐와 의료시장 개방을 통해 의료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상하이의 경우 영리병원을 만들면 3년간 법인세를 면제해 준다. 중국 의료기관도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료 산업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 법과 규제 때문이다. 의사나 비영리법인이 아니면 의료기관에 투자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병의원은 규모가 영세하다. 의료 분야에선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중국을 그저 부럽게 바라볼 뿐이다.

물론 의료의 공공재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료는 국가가 담당하고 민영의료는 과감히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민간자본으로 설립한 민영의료기관에까지 공공재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일반 기업처럼 주식시장에 상장도 하고,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도 생기고 회계와 경영도 투명해진다.

세계적인 병원인 싱가포르의 래플스 병원은 증시에 상장된 뒤 수익률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린다. 샴쌍둥이 수술 같은 고난도 수술의 성공 여부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린다. 상장기업으로서 투명한 회계와 엄격한 감사제도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올린다. 심지어 자본을 투자받아 중국 본토와 홍콩 등의 의료기관을 인수합병(M&A)까지 한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공공의료체계가 무너질까 염려하는 이들도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리병원이 허용된 미국이나 싱가포르에서 영리병원 비율은 20% 미만이다.

한국 중소병원 폐업률이 매년 7%를 웃돈다. 지금과 같은 낮은 수가체계에서 병원으로의 재투자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이 허용되고 병 의원 간 M&A가 가능해지면 인적자원이나 의료장비의 추가 투자 없이도 의료기관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예컨대 지역의 중소병원을 합병한 뒤 각각의 병원을 심혈관전문병원, 척추전문병원, 검진센터 등으로 전문 병원화하는 인적·물적 자원의 재배치만으로도 경영의 효율성과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복수 의원 개설 불가,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투자 불가, 영리병원 불가 등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200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에서 의료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6%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은 9%대이며 미국은 15.3%다. 한국의 의료 산업 비중을 GDP의 10% 정도로 육성하면 막대한 고용 창출 효과 및 국부 증진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안건영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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