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후지와라 기이치]후쿠다총리 역량 가볍게 보다간

  • 입력 200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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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이 칼럼에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이 장수할 조짐은 별로 없다고 썼다. 지금도 이 정권이 장기화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예상을 뒤집는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정권이 장수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후쿠다 총리의 능력에 관한 한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국회 운영을 보자. 일본 정치사상 처음으로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기 다른 정당이 다수를 차지한 지금 국회에서는 당연히 법안 통과가 어려워졌다. 중의원을 통과한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면 중의원은 3분의 2 찬성으로 재의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당은 재의결할 의석을 갖고는 있으나 이에 대항해 참의원이 문책결의안을 제기할 경우 여야의 정면대결로 순식간에 총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는 후쿠다 총리에게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이 정권이 발족한 지난해 10월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후쿠다 총리가 참의원에서 부결된 테러대책특별조치법에 대해 중의원 재의결을 강행했을 때 민주당은 속수무책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이 문책결의안을 제출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확실해진 단계에서 테러특조법이 중의원에서 가결됐다. 민주당이 총선거를 자민당 이상으로 두려워한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국내 정치에서도 새로운 축이 세워지고 있다. 그 하나가 소비자 행정이다. 후쿠다 총리는 시정방침 연설에서 소비자의 시각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며 소비자 행정을 일원화해 새로 장관까지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실로 교묘한 야당 대책이 숨어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소비자의 시각’은 본래 야당의 특기다. 그동안 매스컴과 국회가 정부를 비판해 온 많은 안건은 어떤 형태건 소비자와 관련돼 있다. 그런데 야당에는 큰 한계가 있었다. ‘소비자’란 말을 사용하면서도 그 기반은 노동자와 농민을 기초로 한 정치조직에 뒀다는 점이다. 소비자라는 정책목표와 노조라는 정치기반에 간극이 있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를 여당이 조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조직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는 편리한 심벌이고 선전에 이용하기 좋다. 앞으로 일본에서는 ‘소비자를 위한 개혁’을 표방하는 정부에 대해 야당이 대응에 궁색해하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일본 역사에서 보면 이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의 노선이기도 했다. 안보조약 개정과 관련해 사임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총리를 이은 이케다 총리는 정치적으로 매파이고 오만한 성격임에도 ‘저자세’를 표방하고 ‘국민소득의 배증’을 내걸었다. 정책의 중심을 ‘국가’ 대신 ‘국민생활’로 전환해 보수정치 노선도 바꿔버렸다. 국가주의적인 기시 총리를 상대할 때는 기운이 넘치던 야당 세력은 국민생활만을 말하는 이케다 총리에게는 대항책을 갖지 못한 채 긴 정체에 빠지게 됐다.

그러면 후쿠다 총리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노선에서 바뀐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릴 수 있을까. 아베 전 총리의 ‘아름다운 국가’ 대신 ‘소비자 중시’를 내걸어 보수정치의 새로운 기반을 만들 수 있을까. 아직 답을 내긴 이르다. 미국발 경제위기에 일본 경제는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어 이 불황을 안고 정권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경제가 궁핍해질수록 여당 지지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불황에 타격을 입은 소비자의 동반자는 민주당이 아닌 자민당’이라는 슬로건이 거리에 넘칠 날도 머지않았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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