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승렬]밀착하는 中-日, 뒷짐 진 한국

  • 입력 2007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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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27일부터 나흘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후쿠다 총리의 베이징대 강연을 관영 TV로 전국에 생중계하는 등 중국의 전례 없는 환대 분위기가 화제다. 작년 10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과 금년 4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일본 방문에 이어 후쿠다 총리의 이번 방중으로 중-일 관계가 ‘봄날’을 맞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후쿠다 총리가 취임 직후 미국 워싱턴을 찾아갔을 때 냉랭했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후쿠다 방중 관계개선 신호탄

후쿠다 총리는 후진타오 주석을 포함한 중국 지도부와의 회담 이후 원자바오 총리의 고향인 톈진 경제구와 산둥 성 공자(孔子) 묘를 방문할 예정이다. 정치 경제 문화의 전면적 관계 개선을 상징한다. 또 18억 달러 규모의 환경기금을 양국이 공동 출자해 중국 환경오염 방지시설을 지원하고 양쯔 강과 보하이 만의 오염 완화를 위한 협력에 합의할 예정이다. 북한 핵문제 등 동북아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는 등 역내 질서 주도국으로서 양국의 견해를 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중국과 일본은 협력과 경쟁의 시소게임을 해 왔다. 중국은 올해 자국 궤도 위성의 미사일 요격과 달 궤도 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일본은 달 궤도에 위성을 띄워 달에서 본 지구의 고화질 동영상을 중계했고 미사일방어(MD) 실험을 성공시켜 기술력을 과시했다. 중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의 자유무역지대를 중화경제권으로 키워 나가려 하고, 일본은 회복세를 보이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세안 지역과의 포괄적 관계를 개선해 과거의 영향력을 되찾겠다는 계획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중-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도록 한 요인은 서로에 대한 필요성이다. 중국은 2005년 이후 일본의 최대 무역 대상국이다. 일본은 최대의 대중국 직접 투자국이자 기술 제공국이다. 올해 양국의 무역 규모는 2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의 무역 마찰과 환율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일본을 보는 중국의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자국 산업보호 정책이 강화되면서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환심을 살 정책 변화가 필요했다.

경제 외적 영역에서도 양국 관계의 질적 변화가 돋보인다. 11월에는 전후 처음으로 중국 구축함이 일본 항구에 기항했다. 일본은 중국 방문단의 일본 최첨단 이지스함 참관을 허용했으나 미국이 제동을 걸었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야스쿠니신사 참배,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 대만 문제로 제약을 받았던 중-일 ‘정치관계’가 전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너무 빨리 커버린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강화될수록 동아시아 지역에서 위상을 제고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더욱 적극성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위상 재정립 새정부에 과제

이제 중-일 관계는 물밑 경쟁과 표면의 협력이 공존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중국인은 일본 제품은 좋아하지만 일본인은 혐오한다. 일본인은 중국의 역사에는 찬탄을 아끼지 않지만 현대 중국에 대한 평가에는 회의적이다. 물과 기름 같은 중국과 일본이 화학반응으로 결합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국이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 역할을 자임하고 협력할 경우 동아시아 질서에서 한국의 주변국화가 우려된다.

한국은 한국을 뺀 일본과 중국의 관계 진전을 안일하게 평가해 왔다. 한국은 그동안 지정학적 입지를 활용해 양국을 경제와 국제정치적으로 잇는 가교 및 중개 역할을 자임했으나 중국과 일본의 직거래 통로가 넓어지면서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남쪽으로는 아세안 10개국과 중국의 대중화경제권이, 옆으로는 일본과 중국의 밀월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새 정부가 고심해야 할 외교적 현실이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교수 중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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