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성폭행犯에게 피해자 신원 알려 준 법원

  • 입력 2007년 12월 12일 2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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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부터 시행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재판에서 피해자의 증언을 들을 때 될수록 가해자와의 대면 접촉을 피하고 비디오 등을 통해 심문하도록 하고 있다. 가해자와 직접 만날 경우 우려되는 제2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성폭력특별법은 피해자(증인) 보호를 위한 규정을 상세히 두고 있는데도 성폭행범(犯)이 재판기록을 통해 증인의 신원을 알아내 협박 편지를 보낸 일이 일어났다.

아홉 살 여아 등 여성 7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 기소된 김모(42) 씨는 1심 재판 중이던 올 5월 법원에 재판기록 복사를 요구했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이더라도 방어권은 보장해야 하므로 재판기록을 복사해 준 것 자체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 법원 직원들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여성들의 주소를 지우지 않고 재판기록을 넘겨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김 씨는 1심 계류 중 재판기록에 나왔던 증인 3명에게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우면 평생 한이 된다”는 위협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결국 혐의를 벗지 못하고 올 9월 항소심에서 21년형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했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범인에게서 편지를 받고 거듭 악몽에 떨어야 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성폭행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합의(용서)를 받아 내거나 불리한 증언을 막으려는 과정에서 2차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피해자 주소를 지우지 않고 기록을 넘겨준 법원 직원들의 무감각이 어이없다”고 말했다.

성폭력특별법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들이 성폭행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제의 법원 직원들은 형사소송법상 피고인도 재판기록을 복사해서 볼 수 있다는 규정만 내세워 검찰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단체들도 범법자의 인권은 강조하면서 범죄 피해자의 인권이나 증인 보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한 사례가 적지 않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범죄 피해자의 인권 및 신원 보호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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