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영]다시 기다려지는 釜山의 영광

  • 입력 2007년 10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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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PIFF) 취재차 오랜만에 부산에 갔다. 해운대는 사람들로 넘쳤고 음식점은 새벽까지 성황이었다. 그러나 정작 부산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땅만 빌려주고 행사는 서울 사람들이 다 한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택시운전사들은 “해운대 횟집과 숙박시설만 반짝 특수(特需)”라고 했다.

2002년 아시아경기,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이어 2020년 올림픽까지 꿈꾸는 국제도시 부산이지만 속은 허한 듯이 보인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었다. 부산인구는 1995년 380만 명에서 2005년 350만 명으로 연평균 2만∼3만 명씩 줄었다. 출산율은 7대 도시 중 최저이고 노인인구 비중은 최고다. 통계청 예측으로는 2030년이면 인구가 289만 명으로 줄어 인천(285만 명)과 거의 같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제2의 도시’ 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2003년 부산 지역총생산(GRDP)은 42조9286억 원으로 총액 면에서는 인천(34조5562억 원)을 앞섰지만 제조업 생산액(5조9471억 원 대 9조4355억 원)과 제조업체 수(9554개 대 1만96개)에서 이미 인천에 추월당했다. 피부로 느끼는 체감 경기는 더 나쁜지, 부산 사람들은 “사실상 제3, 제4의 도시로 밀린 지 오래”라고 말한다.

부산 쇠락의 주된 원인은 알려진 대로 산업 공동화(空洞化)다. 기업들이 싼 땅값과 인건비를 찾아 중국이나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경공업 위주의 경제기반이 무너졌다. 지식기반사업은 수도권이, 중화학공업은 울산이 선점했다.

‘부산의 오늘’에 대해 책임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다만, 화려했던 도시도 불과 몇 년 만에 쇠락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정신이 번쩍 날 뿐이다. 광속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 기업, 도시 이 모든 것들의 업-다운(Up-Down)이 이처럼 빨라졌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에 대해 이건희 회장이 “인력과 기술력이 최고이면서 어떻게 후발주자인 하이닉스보다 뒤질 수 있느냐”고 한 질책은 1등 하기도 힘들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문제는 미래를 대비하고 예방하는 능력이다. 부산에 오기 전, 잠시 들른 울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3년 치 물량을 확보해 놓았다”는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의 말 속에서 울산의 번영이 지속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한국 경제의 오늘을 이끌고 있는 조선 철강 반도체 사업은 20∼30년 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고뇌하고 실천한 기업인들의 미래정신의 결과다. 1982년 11월 당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돈벌이 하려면 반도체 말고도 많다. 왜 이렇게 고생하고 애쓰는가. 국가적 사업이고 미래 산업의 총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1876년 개항 당시 인구 3300명에 불과한 작은 갯마을이었던 부산은 식민지와 광복, 전쟁이라는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도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했다. 바닷물에도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세상사에는 영원한 추락도 영원한 상승도 없다. 부산이라는 도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그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다시 일어선다면 세계 5위 물류항구의 영광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재, 아지매들, 힘 내이소!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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