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

  • 입력 2007년 10월 3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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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가 꿈인 서해(경남 거창군 북상초교 3년) 양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좔좔 왼다. 서해는 지난달 21일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대표 김수연)의 후원으로 학교에 들어선 마을도서관을 보기만 해도 설렌다. 서해는 “헤라클레스의 모험을 연극으로 꾸미면 좋을 것 같다”며 무대를 상상하기도 했다. 이 도서관은 그 꿈이 영그는 곳이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김윤호(전남 장성군 북일초교 4년) 군은 도서관이 놀이터다. 격한 운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호의 어머니 변정아 씨는 아들을 위해 도서관 도우미로 활동한다.

본보가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펼치는 ‘고향 학교에 마을도서관을’ 시리즈에서 소개한 마을도서관들은 이처럼 작지만 뭉클한 사연을 갖고 있다. 그곳에서는 책 한 권 한 권이 알알이 소중한 기쁨이자 희망의 샘터였다.

마을도서관들은 한결같이 생생한 감동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다.

“마을도서관 덕분에 아이들과 주민들이 모두 새롭게 태어나는 기쁨을 맛봤다.”(충북 진천군 금구초교)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 사정을 감안해 학부모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강원 원주시 반계초교) “1권 읽으면 50원 저축해 나중에 도서상품권으로 교환한다.”(경남 거제시 장목초교) “독서만큼 좋은 사교육은 없다.”(제주시 고산초교) “밤에도 깨어 있는 도서관.”(강원 강릉시 연곡초교)

작은 도서관 만드는 사람들이 전국 곳곳에 지원한 마을도서관은 80여 군데. 김 대표가 오래전부터 사재를 털어 왔고, 최근에 네이버가 모두 21억 원을 후원했다.

이 마을도서관들이 모두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책 1000∼3000권을 지원하고 도서관 건물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도서관 운영 방안과 독서지도 전담 교사, 지자체나 향토 기업의 현실적인 지원 등이 더 필요하다.

본보가 소개한 마을도서관들은 아이들과 주민들의 열정, 학교와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어우러진 곳이다. 강릉시는 최명희 시장이 “마을도서관을 문화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도서관 운동을 이끌고 있다. 강릉시립중앙도서관(관장 최순각)은 사서를 마을도서관에 보내 독서 지도나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거창군의 강석진 군수도 “독서 열풍을 일으켜야 한다”며 마을도서관 캠페인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5000만 원의 별도 예산을 책정했다. 전남 장성군 북일초교에서는 김영미 교사가 ‘독서 골든벨 퀴즈대회’를 여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로 아이들에게 책 읽는 기쁨을 더해 준다.

도서관은 21세기 디지털 디바이드를 비롯해 문화와 학습 격차를 해결하는 방안이다. 미국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조합도서관을 만든 이래 도서관이 지식과 정보의 차별 없는 이용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캐나다의 공공도서관 프로그램, 핀란드의 이동도서관 버스, 브라질 쿠리치바의 ‘지혜의 등대’(동네도서관)도 정보와 지식의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운동이다.

우리 고향 학교의 마을도서관도 아이들과 주민들을 지식과 정보와 문화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독서의 힘은 더디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원하는 조화로운 미래를 이루게 해 준다. ‘고향의 마을도서관’에선 그 싹이 트고 있다. 고향의 선후배와 주민들, 지자체와 향토기업들이 작은 뜻을 합치면 그 싹은 쑥쑥 자랄 것이다.

허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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