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우주개발, 정치논리론 풀 수 없다

  • 입력 2007년 10월 3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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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 삐, 삐.’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러시아어로 ‘동반자’라는 의미)가 지구 궤도에 안착한 뒤 보내온 신호는 새로운 우주시대의 개막을 알려 주는 소리였다. 스푸트니크는 직경 58cm, 무게 84kg에 불과한 금속구(金屬球)였지만 인류 문명이 지구의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 우주로 내디딘 첫발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은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상예보, 국제전화 등 인공위성을 이용한 테크놀로지가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 있다. 미사일 방어체제나 고공 무인 정찰과 같은 군사기술에서 인공위성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태초부터 사람들 상상력의 영원한 보고였던 우주는 이제 국가 간 군사 및 기술 경쟁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어 버렸다.

스푸트니크는 1957년 당시에도 국가 기술력의 상징이었다. 당시 소련과 냉전(冷戰)을 하던 미국은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 사실에 국가 전체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기술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했다고 믿었지만 소련이 자기들보다 한발 앞서 우주 개발에 나서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린 기술력을 보이자 깜짝 놀랐다.

미국은 서둘러 이듬해에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했고 수학 과학 교육이 소련보다 뒤떨어졌다고 판단해 중고교와 대학에서의 수학 과학 교육 과정을 전반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우주 개발에 대한 미국인의 열등감은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 등이 아폴로 11호를 이용해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완전히 해소됐다.

국가 간 우주개발 경쟁은 그 후 세계적인 과학기술 발전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국가가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과학 연구와 기술 개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전쟁 중 레이더와 원자폭탄을 국가 주도로 개발하고 종전 후에는 우주개발 경쟁을 국가가 주도하면서 자연히 과학기술 연구에서 국가의 역할이 커지게 됐다.

요즘 와서는 과학 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의 요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세계 각국 모두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도 8월 초 미래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고위험 고수익 기초연구를 위한 정부 투자를 앞으로 10년 안에 2배로 증액하고, 초중등학교 수학 과학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교사 양성과 각종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의 ‘미국 경쟁력 강화 법률(America COMPETE Act)’을 제정했다.

이처럼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에 정부가 적극 나서게 된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최근의 과학 연구는 첨단 장비가 필요해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데다 실패의 위험이 적지 않아 민간이 부담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예산은 자칫 잘못하면 정치인의 과시용 프로젝트에 낭비될 위험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도 NASA 예산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고, 효율성에 대해 항상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의 눈을 끄는 프로젝트가 과학적으로나 기술 개발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제 막 우주개발 사업을 시작한 우리나라도 정치가나 장관의 선호도가 아니라 전문가의 냉철한 판단에 따라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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