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신중선]조용한 ‘문화 외교’의 힘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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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고 있다. 축제 형식을 빌려 함께 즐기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8월 23∼30일 인도네시아 자바 일대에서 열린 우탄카유 세계문학비엔날레 역시 20여 개국의 50여 명 문학인이 어우러진 한마당 축제였다. 인도네시아 문인들을 비롯해 한국 싱가포르 미국 토고 뉴질랜드 등 동서를 망라한 문인들이 국적 나이 종교를 떠나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을 얘기하고 우정을 나눴다. 2001년 시작해 4회째인 이 문학제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여 자카르타-욕야카르타-마글랑-보로부두르사원 등으로 옮겨 다니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기간에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대사관, 이탈리아 문화원 등은 기꺼이 오찬을 마련하는 등 자국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인도는 두 차례나 파티를 열면서 대사가 직접 홍보에 나섰다. 외교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 문학제는 인도네시아 시인이자 템포 매거진의 발행인 구나완 모하맛이 중심인물이다. 템포는 1971년 창간 이후 온갖 역경을 헤치고 질기게 살아남은 인도네시아 정통 시사언론지이다. 과거 수하르토 정권 당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투쟁한 그는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 때문에 템포는 1980년대에 두 번, 1994년에 또다시 정간을 당했다.

템포가 정간당한 이듬해인 1995년 동부 자바 주택가에 자그마한 극장이 소리 없이 문을 연다. 이곳이 바로 우탄카유 극장(TUK)이다. 지하활동의 비밀 근거지로서의 역할을 한 이곳에서는 상업성을 철저히 배제한 문화예술 활동이 펼쳐진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기부금 덕이었다. 템포의 복간은 상상조차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1998년 기적이 일어났다.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수하르토 정권이 몰락한 것이다. 물론 템포도 이때 복간됐다.

구나완은 올해 4월 하동국제문학심포지엄 참석차 내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가 선진국의 인사였다면 어땠을까.

많은 이의 간절한 바람에도 구나완은 끝내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현재 템포 발간과 문학 예술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번 문학제에서도 그는 말 없는 가운데 세계인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충분히 알렸다. 애국이란 큰 소리로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나완은 인도네시아의 진정한 애국자이며 외교관이다.

신중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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