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병주고 약주기…대책없는 부동산대책

  • 입력 2007년 9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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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은 20일 ‘미분양 아파트 해소 방안’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강조했다. 세제(稅制) 감면이나 금융규제 완화 등 인위적인 수요 진작 정책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김 차관은 2년 전 ‘8·31부동산대책’을 마련한 주역으로 훈장까지 받았다.

김 차관이 굳이 정책의 근간을 강조한 이유는 이날 내놓은 방안의 핵심이 정부가 직접 미분양 아파트를 사 준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에둘러 표현하면 ‘미분양 물량 해소를 통한 중소 건설사 지원대책’이지만 사실은 ‘중소 건설사 줄 도산 방지 대책’이다. 국민주택기금까지 투입해 건설사를 구제한다고 하니 정책의 근간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 차관의 말대로 현 정부는 무모하리만큼 우직하게 ‘투기와의 전쟁’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정작 그 결과는 서울 강남 집값은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채 지방 주택경기의 몰락으로 귀결됐다. 물론 “서울 강남 집값을 묶어 둔 게 어디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2월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이미 53%가 뛰었다. 그나마 올해 들어 불안한 안정세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반면 지방은 주택담보대출 규제와 분양권 전매제한조치 등이 쏟아지면서 주택시장이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건설사들의 줄 도산도 1차적으로는 수요 예측을 잘못한 때문이지만 수도권 규제를 피해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정부가 내놓은 정책에 된서리를 맞은 측면도 적지 않다.

공급 대책도 마찬가지다. 국민임대주택 100만 채 건설 계획은 ‘물량 채우기’식 추진 방식 탓에 지방을 중심으로 미임대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주택정책 실무부처인 건설교통부는 5월에 마련한 내부 보고서에서 “미임대가 심화되면 국고 낭비 등에 대한 책임 문제도 대두된다”고까지 진단했다.

정부 주장대로 역대 정권이 부동산 시장을 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냉탕과 온탕을 오간 정책의 비일관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 정부는 매번 ‘정책의 근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근간이 시장원리에 반(反)하는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냉·온탕 정책보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중소 건설사 부도 사태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바로잡습니다]21일자 기자의 눈

△21일자 34면 기자의 눈 “병주고 약주기… 대책없는 부동산대책”과 관련해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은 8·31 부동산대책과 관련해 훈장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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