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칼럼]우리와 저들

  • 입력 2007년 9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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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옛 도읍 터에 있는 조그만 대학에서 근무했을 때다. 대학을 갓 나온 미국 평화봉사단원이 파견되어 영어회화를 가르쳤는데 1년 체재가 보통이었다. 얼마가 지나자 자못 궁금하다는 듯이 첫 파견자가 말했다. 백제가 일본에 한자를 비롯해 문물을 전수해 주었다는 얘기를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고 모든 학생이 같은 소리를 하며 열을 내는데 그게 그리 중요한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복잡한 사안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어서 영어를 배우는 대신 역사를 가르쳐 보답하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이듬해 후임자가 부임해 와서도 같은 소리를 하면서 덧붙였다. 문물을 전수해 주고 도움을 주었는데 일본은 한국을 계속 해코지했다고들 성토하는데 잘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말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고 말하고 그 뒤에 A4 용지 한 장분의 설명서를 건네주었다. 한일협정 체결 직후라는 배경도 적었다.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화제로 영어회화를 시도하라는 말과 함께 고대 일본과 근세 일본을 동일시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도 일렀다.

근대 일본은 우리에게 전횡적 식민주의 실천의 적대적 타자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서구식 근대화 추구의 선구적 모형으로 체감되었다. 서양 문물을 신속하게 수용하여 동양의 강자로 부상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 비난하면서 흉내내기 바빠

이러한 양면성은 우리의 대일(對日) 태도에도 불가피하게 양면성을 부여했다. 이 양면성은 가령 최남선과 이광수에게서 볼 수 있는 초기 반일과 후기 친일이란 모순된 표층의 심층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심층구조는 큰 변화 없이 우리에게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외국 청년에게 다소 의아스럽게 생각되던 40년 전 학생들의 대일 적대감은 수시로 분출되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 보도를 접하는 국민의 이유 있는 반응이 그렇다.

한편으로 곤혹스러운 이웃 나라의 모방이나 추종도 빈번하고 허다하다. TV 프로를 보면 너무나 빼닮아서 민망할 때가 많다. 맛 자랑 같은 프로그램에서 ‘아! 맛있다’며 호들갑을 떠는 장면은 완전한 원숭이 놀음이다. 일본 방송의 습작(習作) 같은 프로그램이나 장면이 너무나 많다.

욕하면서 닮는 것은 어휘 구사에서도 뚜렷하다. ‘발 빠른 행보’ ‘물밑 대화’ 같은 말이 처음 나돌기 시작했을 때 참신하게 느껴졌다. 한글세대의 작품이라고 대견하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보니 저쪽 신문용어를 직역한 것이었다.

근자에는 또 ‘단도리한다’ ‘진검승부’ 같은 일본어를 버젓이 쓴다. 이렇게 해서 우리말이 유연성을 얻게 된다면 그리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창의적 어법 개발보다도 직수입이나 직역에 분주한 것은 보기에 좋지 않다. 이를 훤히 내다보는 일본인들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을까.

적대적 타자에게서도 미덕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못난 짓은 잘 본뜨면서 정말 배울 만한 것은 간과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몇 가지 미덕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왕성한 책 읽기다. 우리와 비교해서 독서량이 엄청나다. 유수한 일간지가 1면의 하단 광고란을 단행본에 할애하는 오랜 관행은 독서 장려의 사회적 기풍을 반영한다. 산업화가 진척되기 이전 종합잡지 목차가 1면 광고를 채우다가 금방 사라진 우리 쪽과 대조된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의 새 번역이 문고판 4권으로 나와서 단시일 안에 30만 부가 나갔다는 며칠 전의 보도가 있었다. 무라카미만 읽는 게 아니고 이것이 일본 문화의 저력이다.

독서-비리 엄벌은 왜 안 배우나

또 하나는 상대적으로 엄격한 법 집행이다. 그쪽이라고 금전 스캔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전적 부정을 파헤친 기사가 발단이 되어 최고 권력자가 수감되고 정치생명이 끝난 사례도 있다. 수뢰 사실이 드러나면 정계를 떠나게 마련이다.

거액 혹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수감된 후 중병인 행세를 하다가 이내 석방되고 사면되는 것이 우리 쪽 관행이다. 이런 전과자와 정치 불량자들이 권력과 정치 실세 주변에서 활보하는 사회에서 정의 구현이 가능할까? 의문이요, 분노요, 절망이다.

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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