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버냉키 對그린스펀

  • 입력 2007년 9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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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과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은 둘 다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색소폰 부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은 대조적이다. 월가에서 실무로 뼈가 굵어진 그린스펀은 평소에 안면 있는 금융계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시장의 미세한 움직임을 짚고, 그 ‘감(感)’을 근거로 과감한 선제(사전)조치를 취했다. 반면 스탠퍼드대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역임한 버냉키는 학자 출신답게 통계의 뒷받침을 받는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을 중시한다. 그린스펀은 모호한 어법을 즐겼지만 버냉키의 말은 단순 명료하다.

▽중앙은행에 대한 철학도 좀 다르다. 그린스펀은 1987년 취임 3개월 만에 다우존스지수가 22% 떨어지는 블랙 먼데이를 맞자 “FRB는 경제금융시스템의 유동성 공급자”라고 공언하면서 과감하게 돈을 풀었다. 증시나 부동산 시장이 위축 조짐만 보여도 주저 없이 개입했다. 특히 시장 과열보다는 시장 위축에 더 민감하게 대응해 ‘최종 대부자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버냉키는 ‘통화가치 수호와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본래 역할이라는 쪽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대해서도 ‘시장 안정’보다는 ‘시장 교정(矯正)’으로 대응했다. 금융기관이 고수익에 이끌려 위험하게 자산을 운용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하며, 툭하면 FRB에 의존하던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는 뉘앙스다. 버냉키가 지난달 금리 인하보다 훨씬 강도가 약한 재할인율 인하를 택한 것도 이런 해석을 낳았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기보다는 ‘온도 차’가 느껴지는 정도다. 18일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눈에 띄기 마련이어서인지 월가에서는 그린스펀의 인기가 높고 학계에서는 버냉키 지지자가 많다. 어쨌거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버냉키가 취임 1년 반 만에 만난 첫 시련이다. 버냉키식 대처로 시장이 교정될지, 더 큰 위기로 치달을지 국제금융계가 숨소리를 낮추고 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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