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근거로 내세우는 정부조직법만 해도 ‘국가안보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를 위해 국정원을 둔다고 돼 있다. 대한민국의 국기(國基)를 흔들고 체제를 위협하는 간첩이나 테러활동을 막는 것이 국정원의 존재 이유라는 얘기다. 국정원법도 국정원의 직무를 대공(對共), 방첩(防諜), 테러, 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수집으로 국한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법 또한 ‘국정원장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내외 정보를 수집·평가해 보고(報告)하는 자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들이 어떻게 사기, 카드깡, 불법건강식품 유통, 조직폭력 등과 같은 민생범죄와 부패에 관한 정보 수집의 근거가 되는가.
국정원은 대통령 훈령인 ‘반(反)부패 관계기관 협의회 규정’까지 내세우지만 이 훈령이야말로 문제의 악화를 부채질했다. 국정원은 국정원장이 반부패 관계기관 협의회에 배석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부패정보 수집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훈령이 법 위에 있을 수 없을뿐더러 ‘배석’을 그런 권한의 부여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
그나마 2004년 1월 훈령이 제정될 때는 배석 조항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듬해인 2005년 7월 김승규 신임 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국정원이 토착비리 정보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해서 급히 집어넣은 것이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정원의 ‘전방위 사찰(査察)’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업무의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민생경제 범죄 적발’이라는 구실로 언제든지 정치사찰에 악용할 수 있다. 그 생생한 예가 이번 부동산자료 열람 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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