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험생 잡는 임기 말 대통령의 大入 개입

  • 입력 2007년 6월 18일 2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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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대학의 내신반영 축소 방침에 범정부적으로 대처하라”고 지시하면서 올해 입시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4월 입시요강을 확정해 발표했던 서울대는 정부 쪽의 변경 요구에 ‘일단 정해진 입시안을 바꾸면 대학 신뢰가 훼손된다’며 기존 안을 유지한다고 밝혔지만 정부 압력이 커질 경우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주요 사립대들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입시안 발표를 최대한 늦추려 하고 있다. 이래저래 수험생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입시 개입은 이번뿐 아니다. 2005년 7월 그가 서울대의 통합교과형 논술을 ‘나쁜 뉴스’라고 비판하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논술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정부가 논술 시험문제의 출제방식까지 간섭하는 것은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 지문을 내지 말라는 코미디 같은 가이드라인도 이때 나왔다.

2005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백서에는 ‘노 대통령이 수능 9등급제를 도입하면서 1등급을 상위 4%까지에서 7%까지로 늘리려 했다’고 쓰여 있다. 수능시험이 점수제에서 등급제로 바뀌어 대학들은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인데 교육 비전문가인 대통령이 1등급의 비율을 더 늘리려고 한 것이다. 상위권 대학을 평준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이런 발상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입시제도를 적어도 3년 전에 정하게 되어 있는 것은 교육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위함이다. 이번 개입은 수능시험을 불과 5개월 앞두고 나왔다. 서울대의 4월 입시요강 발표 때는 별 말이 없던 교육부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표변한 것도 한심하지만 수험생이 대비할 기간도 챙겨보지 않고 불쑥 개입한 대통령은 너무 즉흥적이다.

그가 “‘내신 무력화’는 고교 등급제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능시험에서 7등급까지 맞는 일이 있을 만큼 내신의 신뢰성이 떨어져 대학들은 고민하고 있다. 교육이 일시적 감정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합리성이 부족해 내년이면 사라질 운명의 입시제도로 고교 3학년 학생들만 괴롭히는 것은 임기 말 대통령의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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