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성수]정치브로커를 내쳐라

  • 입력 2007년 5월 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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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있다 보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아무개 교수가 유력 후보 캠프에서 일하게 됐다며 은근히 부러워하거나, 가진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를 받는다는 식으로 비꼬는 사람을 가끔 만난다. 학자로서 연구에 바쁘고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 시간을 바치는 대다수의 교수는 이런 일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다.

측근 행세… 후보에게 돈 요구…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서 수많은 교수가 현실정치에 참여한 뒤 쓴맛을 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정치판을 그리워하는 교수들이 있다. 대학이 아무리 상아탑이라고 해도 시속의 오염에서 정녕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인가?

권력에 한없이 약하고 대선에 다걸기하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을 반영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정치브로커가 여전히 활개치고 다니며 대선판을 오염시키고 그렇지 않아도 후진적인 정치문화를 더욱 타락시키는 현상을 목도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활동한 최규선 씨가 한때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지만 대통령 아들에게 로비를 한 혐의로 두 사람 모두 옥고를 치르고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은 이른바 최규선 게이트가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는데도 말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유력 후보의 비서관을 사칭하는 명함을 갖고 다니면서 각종 행사 때 나눠 주며 측근 행세를 하거나, 유권자 동원 능력을 과시하며 공공연하게 후보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여전하다고 한다. 또 경쟁 상대인 후보의 큰 비리를 아는 체하면서 후보 캠프에 일정한 자리를 요구한다는 얘기가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작 문제는 정치브로커가 후보자에게만 피해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의 경거망동으로 선거가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4·25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내홍을 보이고 이명박 박근혜 후보 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짐에 따라 당내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정치 철새와 브로커의 준동이 극심할 것으로 우려된다. 뚜렷한 후보가 가시화되지 않은 범여권에서도 상대방 후보를 흠집 내고 실추된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정책 대결보다는 네거티브전략에 의존하려는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 어려울지 모른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정치권과 유권자 사이를 매개하려는 세력이 있다. 공식적인 정치제도나 언론이 간과하기 쉬운 정치적 이슈와 유권자 의사를 보다 유연하게 전달하는 순기능을 어느 정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매개 행위가 법을 위반하면서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하고 이권에 개입해 금권정치의 구태를 부추긴다면 선거관리위원회, 검찰, 법원 등 국가기관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싹을 잘라야 한다.

이젠 법과 제도로 다스릴 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정치권 스스로 자각과 자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치브로커에게 의존하는 정치는 반짝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크나큰 후유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역사의 주인공이기를 바라는 정치인을 자칫하면 역사의 죄인으로 타락시키는 무서운 바이러스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회 문제가 그러하듯 의식 개혁과 동시에 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미국에서 연방정부에 로비를 하려는 사람은 당국에 등록해야 한다. 1995년 ‘로비 공개법’이 제정된 후에는 등록은 물론 누구를 위해서 어떤 목적으로 일하는지 등 활동 내용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도 이제 정치브로커가 음지에서 활동하게 방치하지 말고 법과 제도로 다스릴 때를 맞고 있다.

김성수 한양대 법대 교수·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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