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용만]‘日잃어버린 10년’ 전철 밟나

  • 입력 2007년 1월 1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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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폭락의 역사를 보면 유동성 과잉이나 급격한 신용경색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열병을 앓고 있었다. 대도시의 택지 가격은 1985∼90년에 적게는 150%, 많게는 300% 가까이 상승했다. 열병의 원인은 저금리였다.

저금리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히 진행된 엔고(高)의 산물이었다. 저금리는 엔고의 속도를 늦추고 거시경제의 위축을 막는 묘수였지만 그 대가로 자산가격의 급등이라는 열병을 앓아야만 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거래 규제나 양도소득세 강화 등과 같은 투기 억제책으로 대응했다. 이 조치가 부동산 가격 안정에 별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일본 정부는 1989년 중반에서야 비로소 금융 긴축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1989년 5월부터 시작된 재할인율 인상 조치는 대단히 급진적이었다. 일본 정부는 1년 3개월 사이에 재할인율을 2.5%에서 6%로 급격히 인상했다.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일본 정부는 여기에다가 융자총량제라는 또 다른 강수를 던졌다. 부동산 분야에 대한 융자액을 축소하도록 금융기관에 지시했다.

금리인상 조치로 가격 하락 조짐을 보이던 부동산 시장은 융자총량제로 파탄을 맞게 됐다. 갑작스럽게 자금 상환 요구를 받은 부동산 관련 기업이 파산하고 덩달아 금융기관이 파산했다. 실물경기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이런 사태에 놀란 일본 정부는 금융 정책을 확장 기조로 급격히 바꿨지만 금융시장과 실물경기는 회복 불능 상태로 망가진 다음이었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 폭등 과정과 이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을 살펴보다 보면 어쩜 한국과 이렇게 비슷할까 하고 감탄하게 된다. 저금리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된 원인이라는 점이 그렇고,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 투기 억제책에 장기간 매달린 점이 그렇다. 막판에 금융의 목줄을 죄는 방법도 비슷한 것 같다.

한국의 종착지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이 되는 것은 아닌가? 현재 한국 상황이 일본의 거품경제와 다르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금융시장이 망가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사실 그런 측면이 있지만 작금의 주택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이는 희망 사항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정부는 주택금융의 숨통을 쥐어틀면서 동시에 시장규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시장규제가 주택 가격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 확대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 조치로 민간 부문의 신규 주택 공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나 할 수 있고 이런 예상 때문에 주택금융의 숨통 죄기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의 주택 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해 온 정부의 정책 행태로 보아 예상되는 수순과 종착지는 비극적이다. ‘숨통 죄기가 약해서 그런 모양인데 누가 이기나 보자’면서 더욱 숨통을 죄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파국을 맞는 비극 말이다.

저금리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을 투기에 따른 거품으로 치부하며 투기 억제책만으로 대응하다 막판에 과잉 숨통 죄기로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한 일본. 한국이 뒤따라가는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잃어버린 10년’은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들딸의 문제이기도 하므로 더욱 그러하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부동산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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