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신의 대변자, 악마의 대변자’

  • 입력 2006년 12월 20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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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대변자, 악마의 대변자’

‘반값 아파트’ 논란이 새삼 눈길을 잡는다. 국민 사이에 ‘정책 실패’로 평가가 내려진 부동산정책들을 세우고 집행해 온 정부가 이번엔 야당의 정책 아이디어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때문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제기해 당론으로 정해진 ‘토지임대부’ 방식의 반값 아파트건 이계안 열린우리당 의원이 뒤따라 내놓은 ‘환매조건부’ 방식의 반값 아파트건 실제 추진하려면 다듬을 대목이 물론 많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전반에 영향을 줄 만큼 폭넓게 시행하기엔 재정 여력도 크게 부족하다. 자칫하면 내년 대선 정치판에서 선심정책 경쟁용으로 변질될 우려도 높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관심을 보인 것은 높은 분양가, 치솟는 집값에 지친 탓이다.

홍 의원 안에 대해 강팔문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장은 “반값 아파트는 말장난”이라고 공격했다. 강 본부장은 “그 용어가 기정사실처럼 확산되면 예민한 부동산시장에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래서 “정치적 구호나 불확실한 기대를 앞세우기보다 현실성과 실효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중요한 때”라고 했다.

강 본부장이 쓴 단어들은 모두 이 정부에 고스란히 돌려주어도 좋은 것이다. 예민한 부동산시장이 정부가 수년간 퍼부은 ‘정책 폭탄’들 때문에 더 왜곡되고 값은 치솟았다. 허망해 하는 국민 앞에서 그 부작용을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다.

강 본부장의 반론에 여야 모두 발끈했다. 그러나 정책 당국자가 남모를 사정이 있어서 나섰더라도 모처럼 맞대응해 준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정치권은 그를 야단만 치지 말고 정중히 모셔 그의 말대로 부동산대책의 기본 방향과 실효성 있는 방안을 논의해 보기 바란다.

따져 보면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원인 중 하나는 취약한 반대 토론이다. 종합부동산세 중과(重課), 서울 강남 재건축 억제 등을 궁리할 때 “더 예민해진 부동산시장이 정부가 보는 것과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고 지적해 준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그 결과 예상 효과는 부풀려지게 되고 국민에게 과도한 기대감을 심어 주고 만다. 정부 내에선 가볍게 보지만, ‘코드인사’의 폐해이기도 하다.

가톨릭교회에서 1983년까지 400년간 지속된 성자(聖者) 후보자 심사방식이 있다. ‘신의 대변자(God's advocate)’는 후보자가 행한 기적들을 제시하면서 성자로 이름을 올려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는 증거들을 하나하나 의심해 가며 잘못은 없는지 따진다.

미국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로버트 케네디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 핵심 참모회의에서 정책 실수를 줄이기 위해 악마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슈를 피상적으로 다루지는 않는지 감시하고 그룹 내에서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때로는 예의 없는 질문을 퍼붓기도 했다.

아무리 ‘코드정부’라 해도 일하는 방식마저 코드로 흘러선 곤란하다. 위원회마다 신의 대변자들이 발언권을 달라고 난리인 반면 악마의 대변자 자리는 비어 있다. 이런 위원회가 어디로 흐를지 뻔하다. 최근 몇몇 위원회에서 정부로부터 들러리 역할을 요청받은 민간위원들이 사퇴한 일도 있었다. 정부는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선호하겠지만 일방통행 정책은 반드시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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