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염치없는 정연주 씨

  • 입력 2006년 9월 27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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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씨와 그를 KBS 사장으로 연임시키려는 정권의 밀어붙이기가 도를 넘어섰다. 정 씨는 임기가 만료된 뒤 88일 동안 사장직무대행이라는 이름으로 버텼다. 노조가 ‘연임을 원한다면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해 들어오라’고 요구하자 그는 어제 사장직에 응모하는 동시에 사표를 냈다. 관련 법규에 사장 연임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지만 이는 염치(廉恥)를 잃은 행위다.

정 씨의 경영 성적표를 보자. 방송위원회가 평가한 경영 효율성은 지상파 3사 중 꼴찌다. 2004년 638억 원의 적자를 냈고, 작년 80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자 경영 잘못의 책임을 지고 7월부터 매월 임원 임금의 20%를 자진 삭감했다. 작년에 흑자가 난 것은 경영을 잘해서가 아니라 수신료에 부과됐던 거액의 세금을 돌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잊은 듯이 삭감한 임금을 6개월 만에 슬그머니 되찾아 갔다. 국민 기만(欺瞞)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KBS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같은 정치적 고비마다 편파방송으로 국민의 신망을 잃었다. 직원들의 82%가 정 씨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정 씨가 사내외 여론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어제 사장직에 응모한 것은 정부로부터 모종의 언질을 받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부가 대표적인 인사개혁으로 내세운 기관장 공모제는 청와대 등의 ‘낙하산’을 정당화해 주는 요식절차가 된 지 오래다. KBS 이사회는 친여(親與) 8 대 비여(非與) 3으로 구성돼 있고, 사장추천위원 7명 중 과반수인 4명을 KBS 이사가 차지하고 있다. 노조원들이 들러리 사장추천위를 성토하며 송출탑에 올라가 농성을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다.

정권이 정 씨에게 집착하는 것은 KBS를 정권 재창출의 도구로 쓰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본다. 권언(權言)유착을 끊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방송의 ‘코드 경영자’와는 끈끈한 유착을 유지하는 정권의 이중성이 정 씨 연임 시도에서 드러나고 있다. KBS는 국민의 방송인가, 노무현 정권의 선전기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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