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잃어버린 10년’은 그렇다 치고 ‘남은 1년 반’ 어쩔 건가

  • 입력 2006년 8월 26일 03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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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 10년간 민주주의 개혁세력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했다”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집권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민생(民生)을 중시하는 실용노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말인즉 맞다. 문제는 현 정권의 ‘남은 1년 반’이 더 걱정이라는 점이다.

여당의 김 의장과 강봉균 정책위의장 등이 꺼낸 ‘경제 활성화를 위한 뉴딜정책’만 해도 파란불과 빨간불이 동시에 켜져 전진하는지 후진하는지 알 수가 없다. 노 대통령은 기업의욕을 북돋우고 시장원리에 맞는 정책을 펴기보다 ‘충격과 억제’로 시장을 다스리려는 ‘무모한 모험’을 일삼았다. 그러고서도 “내 임기 동안 경제는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투자와 소비와 일자리는 해외로 달아났다. 개혁과 분배와 균형을 앞세워 ‘서민을 위한 정치’를 외쳤지만 경제의 기초원리조차 무시한 독선은 국민을 힘겹게 했을 뿐이다.

강 정책위의장은 출자총액제한제, 대기업규제 위주의 공정거래정책 운용, 수도권 규제를 ‘3대 투자 장애’로 규정하고 출자총액제한을 연내에 풀겠다고 했다. 뉴딜정책의 일환이다. 여당의 이런 변신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청와대는 ‘정체성(正體性)’을 내세워 딴죽을 걸고 있다.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이지 못한 채 공허한 정치적 구호나 되뇌어선 민생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3년 반 동안 확인하고도 좌파적 정체성의 주술(呪術)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결연한 자세로 이를 돌파해야 할 여당도 “절대 뉴딜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변죽만 울릴 뿐, 구체적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붙겠다”던 김 의장의 호언은 어디로 갔나.

사립학교법을 놓고는 여당이 청와대의 발목을 잡는 엇박자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청와대의 사학법 개정 요청을 “당의 정체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거부했다. 반(反)헌법적 독소조항투성이인 사학법을 고치지 않겠다는 고집은 ‘실용’을 말하면서도 ‘코드’를 버리지 않겠다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증거다.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 등 외교안보 사안에 있어서는 국민의 안전을 걸고 도박하는 ‘좌파 모험주의’를 버리지 않는 청와대와 여당이다. 최근 군(軍) 원로들이 “작전권 환수는 인기영합주의이며 ‘전쟁억제 보험’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김 의장은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이러니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좌회전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바다이야기’ 사태는 여권(與圈)의 국가운영능력 부재, 도덕성 결여, 탐욕과 부패를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온 나라를 ‘도박 광풍’에 휩싸이게 한 이 사행성 오락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1년 전부터 갖가지 경고음이 울렸다. 작년 6월에는 야당 의원들이 국회에 감사청구 촉구안을 냈고 서울흥사단도 올해 6월 감사원에 국민감사를 청구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5월 영상물등급위원회와 오락업체 간의 유착이 심각함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국가정보원도 지난달 ‘조직폭력세력이 상품권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으며 성인오락실 등의 세금 탈루가 연간 8조8000억 원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냈다.

이를 방치 또는 조장한 정권이 제대로 된 정권일 수는 없다. 더구나 권력핵심 연루설이 무성한 데도 노 대통령은 “정책적 오류 말고는 국민한테 부끄러운 일이 없다”고 태연히 말한다.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이런 정권과 함께해야 할 남은 1년 반이 암담하게 느껴진다.

열린우리당 김 의장은 ‘잃어버린 10년’에 공동책임이 있다. 지금이라도 경제 살리기에 나서겠다면 확실한 태도와 철학을 보여야 한다. ‘나는 하려는데 정부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퇴로(退路)나 찾는다면 또 한번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이 될 것이다.

한나라당도 ‘불난 집에서 튀밥 주워 먹는 식’의 기회주의에서 벗어나 경제와 민생을 살릴 정책 추진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강재섭 대표는 뉴딜정책에 대해 “여당과 청와대가 먼저 합의하라”고 했지만 이는 구경꾼의 자세다. 먼저 여당에 정책 대타협을 제안하고 나설 수는 없는가. 궁극적으로 누가 민생을 위한 정치를 하는지 국민은 판단할 것이다. 이제 ‘노무현 청와대’보다 차기정권 경쟁을 벌일 여야의 리더십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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