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산자 아닌 미라를 찾는 의사

  • 입력 2006년 5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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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제발 이제 땅 좀 그만 파고 다녀요.”

아침마다 집을 나서는 내게 아내는 언제나 볼멘소리를 한다. 하기야 흰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서 환자를 돌봐야 할 의사가 오래된 묘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는 꼴이 영 못마땅하긴 할게다. 아내뿐만 아니다. 의대 교수라는 직함이 찍힌 명함을 돌리며 ‘묘가 어쩌고저쩌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에 의아해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모두 “미라 한번 연구해 볼 생각 없냐”는 선배의 생뚱맞은 제안에 무심코 “좋다”고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하지만 미라라는 단어가 주는 신비감 때문인지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그러던 지난가을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선생님, 수원으로 얼른 오세요. 빨리요.”

수원 인근에서 오래된 무덤을 발굴하던 조사단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뭐 좀 나왔나 보죠?”

급히 차를 몰아 현장에 도착해 보니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모래자갈과 석회로 단단하게 둘러싸인 회곽묘가 있다는 뜻이다. 때마침 나무관에 들어 있던 작은 시신이 천에 싸인 채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시신을 덮은 옷은 화려한 금박 문양이 도장처럼 찍혀 있어 범상치 않은 가문 출신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머리 부분에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보니 시신의 상태는 양호했다. 미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기대가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한 꺼풀씩 옷을 벗겨 내리자 시신은 살은 없고 뼈만 남은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면 그렇지. 또 공쳤다.”

하지만 수습해 온 시신은 처음 예상과 달리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다음 날 시신의 DNA와 머리카락 샘플을 채취하던 중 상태가 양호한 뇌를 발견한 것이다. 두부처럼 연한 뇌는 모진 세월의 풍파를 잘도 견뎌 냈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골반에서는 기생충 알을 발견할 수 있었고, 머리카락에서는 중금속을 검출했다.

수백 년의 시간을 초월한 미라는 과거의 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과도 같다. 미라는 베일 속에 감춰져 온 당시 의술과 시대 환경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오늘도 전화가 울리면 새로운 타임캡슐을 만난다는 막연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나의 ‘명함 영업’은 계속된다.

“회곽묘가 나오면 전화 좀 주시지요.”

김명주 단국대 의예과 조교수 mjukim99@d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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