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평택 대추리에서 바라본 한반도 安保현실

  • 입력 200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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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한미군 사령부 이전 예정지인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는 1980년대 대학가의 시위현장을 연상케 했다. 대추분교에서 농성을 벌인 200여 명의 시위대는 “미국 놈 몰아내자” 등 반미 구호를 계속 외쳤고 마당에는 죽창과 각종 피켓이 가득 쌓여 있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 대책위원회’(범대위) 공동대표인 문정현 신부는 옥상에서 투신 위협까지 했다. 권위주의 정권시절에 보았던 장면들이 되살아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날 시위는 시대착오적인 ‘소수(小數)의 목소리’였을 뿐이다. 기지 이전에 반대하며 이주를 거부하고 있는 원주민은 전체 680가구 가운데 69가구(100여 명)뿐이다. 여기에 민중연대 민주노총 등 115개 반미단체가 참여한 범대위의 ‘반미 반전 평화활동가’ 50여 명이 상주하며 극렬시위를 주도해 왔다.

어제 시위에 끼어든 1000여 명 대부분은 대추분교 농성자들을 강제 퇴거시킬 것이라는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전문 시위꾼이었다. 한 주민은 “대다수 원주민은 보상에 만족해 떠났고 시끄럽게 하는 사람은 대부분 외지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주민 중 핵심 간부들의 보상금은 최고 27억9000만 원에 평균 19억2000만 원에 이른다고 했다. ‘주민 생존권 보장’이라는 이들의 주장이 ‘웰빙 시위꾼들’의 배부른 요구였던 셈이다.

‘평화’를 내건 범대위의 주장은 더 위선적이다. 당초 용산 기지 이전은 1988년 시민단체 등의 여론을 수용해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요구한 것이다. 2004년 12월에는 국회의 비준동의까지 받았다. 범대위의 속셈은 결국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 최근 민주노총 측이 “남북 노동자가 연대해 반미투쟁을 전개하자”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민주평통 모임에 참석해 “고난의 역사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 얽혀 잠 못 이루는 청와대의 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심상치 않은 주변정세를 의식한 발언임이 분명했다. 한미 동맹의 이완 속에 일체화(一體化)되다시피 한 미일 군사동맹, 금융제재와 인권을 통한 미국의 대북(對北) 압박과 북한의 중국 경사(傾斜) 움직임 등을 생각하면 누군들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럴수록 대통령은 입장을 밝혀야 한다. 소수 친북(親北) 좌파 세력을 향해 ‘한미동맹과 국기(國基)를 흔들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설득해야 한다. 침묵을 지키면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고만 하면 국민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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