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수억 재산을 동영상 보고 고르라니

  • 입력 2006년 1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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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아파트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파는 옷가지입니까?”

정부가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3월 분양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인 27일 오전 한 독자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판교 아파트에 청약할 예정이라는 그는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직접 보고 결정하는데 수억 원을 줘야 하는 아파트를 인터넷 정보만 보고 청약하라는 정부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판교 분양에 처음 도입하는 사이버 모델하우스와 인터넷 청약에 대한 비판은 이 독자만 제기하는 게 아니다.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

사실 판교 청약은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원가연동제로 당첨만 되면 차익이 크기 때문에 너도나도 판교 아파트를 노린다.

정부는 모델하우스에 엄청난 인파가 몰릴 때의 혼란과 안전 문제를 막기 위해 이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팎의 사정을 따져보면 정부가 ‘실험’을 강행하는 배경은 따로 있는 듯하다.

정부의 속뜻은 청약 열기를 되도록 냉각시켜 판교발 ‘부동산 광풍’을 막자는 것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판교 청약 창구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모델하우스가 북적대면 부동산시장을 자극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이 아예 모이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청약 과열을 줄이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비자의 기본적인 정보를 차단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청약 희망자들은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채광이나 마감재의 틈새까지 살펴보는 게 보통이다. 사이버 모델하우스에서는 아파트 구조 등을 주마간산 식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인터넷 청약 역시 아직 시뮬레이션도 거치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 인터넷 서버를 최대한 늘린다지만 20일 우리은행에서는 5시간 동안 전산망이 마비된 일도 있었다.

정부에게는 판교가 잘못 대처하면 정권 차원의 악재가 될 수 있는 ‘뜨거운 감자’겠지만, 이곳에 청약하려는 국민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이 담긴 곳이다.

3월 29일 청약까지는 아직 두 달 남았다. 공무원들의 행정 편의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대책이 추가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승헌 경제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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