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儀典자리다툼

  • 입력 2006년 1월 7일 03시 02분


코멘트
1983년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은 아웅산 묘소에 예정보다 8분 늦게 도착해 북한의 테러공격을 모면했다. 출발 직전, 수행 의전장이 5분 늦게 나타나자 전 대통령은 언짢아하며 방에서 3분을 더 머물렀다고 한다. 의전 실수가 대통령을 살린 셈이다. 의전에서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자리 배치다. 까다롭다는 외교 의전에서 ‘초보’ 국가원수의 실수를 눈감아주는 것과는 다르다.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에 윤영철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불참했다. 헌재 측은 “청와대가 헌재소장을 국무총리보다 뒷자리에 배치했다”며 오래된 의전 문제를 꺼냈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과 4위인 총리, 왼쪽으로 3위인 대법원장에 이어 5위인 헌재소장 등 순으로 배치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헌재는 헌법기관이고 국회법 46조 3항(인사청문회)에도 ‘대법원장, 헌재소장, 총리’ 순으로 돼 있다는 점 등이 근거다.

▷“실세 총리는 대우가 다르냐”는 일각의 지적을 청와대는 부인한다. 대통령의 3부 요인 초청 행사 등 관행적 의전 서열을 따른다는 주장이다. 정부수반인 대통령 아래의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을 대신해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로 본다는 논리다. 청와대는 “연설 순서 등에선 헌재를 앞세워 준다”며 관행을 강조하지만 헌재는 승복하지 않는다. 헌재 주변에선 행정수도법 위헌결정 직후 헌재소장이 대통령 만찬행사에 초대받지 못한 사례를 포함해 “헌재의 격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행사 때 국회의원과 도지사 자리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나요.” 정부 의전을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의전팀에 가장 많이 걸려오는 문의전화다. ‘행사 성격 등에 따라, 행사 연관성을 감안해 자율적으로 정한다’는 게 답이다. ‘결례가 되지 않게’란 주의사항도 있다. 줄줄이 권력 서열이 발표되는 북한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에선 서열이 없다는데, 의전 서열을 정할 때 직위 직급 등은 물론 봉급을 따지기도 한다니 심심풀이로 서열 짚어 보기도 쉽지 않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