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7년 美신화학자 조지프 캠벨 사망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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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만신전(萬神殿)이 있다. 최신형 오이디푸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길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신화는 허무맹랑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삶에 대한 이야기다. 불행과 결함을 딛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영웅의 모험담은 길거리의 초라한 중년 남자, 별 볼일 없이 시들한 사람의 삶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다함없는 우주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인 신화. 그것의 현재성을 새롭게 발견한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신화해설자’라고 불리는 미국의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다.

1987년 10월 31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뜬 그는 세계 여러 문화권의 신화를 연구해 ‘신의 가면’ 1∼4권을 비롯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등 신화와 관련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신화의 세계에 빠져든 계기는 소년시절 즐겨 읽던 북미 대륙 원주민의 신화와 아서 왕에 나오는 많은 주제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어디 아서 왕뿐이던가. 신데렐라와 콩쥐는 둘 다 계모 밑에서 핍박을 당하다 신발을 잃어버린 것을 계기로 구원을 얻었다.

‘해리 포터’와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등 21세기 초반 세계를 휩쓴 베스트셀러 소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아버지 없이 외롭게 자랐으며 원하지 않던 소명을 떠안고 모험을 떠나는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을 그대로 반복한다.

캠벨에 따르면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신화는 동일한 서사 구조를 갖고 있다. 신화 속 영웅은 낯선 곳으로 고난의 여행을 떠나야 하며 그 과정에서 조력자를 만나고 고난을 극복한 뒤 공동체를 위한 선물을 갖고 귀향한다.

영웅의 여정은 사실 모든 인간이 미성숙한 소년 단계에서 독립된 개체로 거듭나는 과정, 개인이 지닌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에서 우리는 자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영웅이다. 현실의 자리가 하찮은들 어떠한가. 캠벨의 말마따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좇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던 길을 걷고 있는 셈”일 텐데.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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