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웅진]로버트 김에게 국가 위해 일할 기회 주자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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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이 11월 6일, 1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다.

그와 한국 국민 사이에는 분단 조국의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희생, 순수한 도움이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시대의 얼굴이 되었다.

그는 “단지 조국을 잊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애국자니, 영웅이니 하는 말이 과분하다고 했다. “나는 다 잊었다”며 당시 한국 정부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그가 참 고맙다. 그는 자신이 받은 것만을 얘기할 뿐, 준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혹시 그가 스파이 아닐까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자신이 도왔던 조국은 있는데, 자신을 도와 줄 조국은 없었던 그의 현실, 30년간 이뤄온 성공과 명예를 한순간에 잃고, 쉰여섯 나이에 죄수복을 입어야 했던 심정을 생각한다면 그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의 귀향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런 관심이 그가 조국 땅을 밟는 드라마 같은 장면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후원회 해산으로 공식적인 지원은 끝이 났다. 하지만 빚 청산, 거처, 최소한의 생활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약속받은 후원금 중 30% 정도는 아직 받지 못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기억력은 길지가 않다. 그가 늘 우리의 관심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수감기간, 가택연금, 가석방, 보호관찰 등으로 굵직굵직한 뉴스 메이커였지만, 자유인으로 돌아간 이상 더는 뉴스도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그에게는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그에게 기회를 주자. 그는 사회운동가, 교육자, 이런 거창한 타이틀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정부 공무원으로 핵심 정보를 다루면서 터득한 국제사회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한다.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기도 한 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최근 그는 한국에서 자신에게 기부된 돈은 한 푼도 미국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모인 돈으로 ‘로버트 김 재단’을 만들어 한국인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조국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 하다가 고초를 치렀지만, 여전히 조국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 하는 그다.

그렇다고 후원회 같은 단체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를 도왔던 사람들은 조용히 그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이다. 이것은 한국민에게 더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그의 뜻이기도 하다.

재단 설립은 로버트 김의 바람으로 끝날 수도 있다. 멀고 힘든 길을 돌아 다시 조국 앞에 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지키려고 했던 한국인의 이름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꼭 필요하다.

그는 애국가만 들어도 코끝이 찡하다는 사람이다. 수많은 탄원, 재심 청구 등을 직접 해내며 삶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잊지 않고, 지켜 주고 싶은 우리 자신과도 같은 사람이다.

이웅진 로버트 김 고국방문 지원모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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