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보정치 ‘피해자’에서 ‘가해자’ 된 DJ정권

  • 입력 2005년 10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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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자행한 불법 감청(도청)은 정권 차원의 조직적 범죄로 드러나고 있다. DJ정부가 국정원에 감청팀을 운영하면서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의 통화를 하루 10건 안팎으로 광범위하게 엿들어 ‘통신첩보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도청의 최대 피해자’임을 내세우며 ‘정치사찰 근절’을 강조했으나, 일상으로 기본인권을 침해한 ‘도청 가해자 정권’이자 음습한 정보정치의 주역이었던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감청팀은 김은성 국내담당 차장에게 ‘통신첩보 보고서’를 올렸고 임동원, 신건 국정원장은 김 차장을 통해 이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김 전 차장의 진술을 뜯어보면 그 다음 단계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어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전 차장은 “대통령께서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도청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당시 정권 실세(實勢)나 청와대 라인을 통해 대통령에게 도청 정보를 보고했다는 뜻이 아닌가. DJ 측은 여전히 “도청을 한 적이 없고, 불법적인 내용을 보고 받지도 않았다”고 잡아떼고 있지만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시 국정원장은 매주 한 차례 대통령과 독대(獨對)를 했다. 휴대전화 감청 승인서에 DJ가 서명을 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8월 18일 언론사 정치부장들을 만나 “정권의 도청과 국정원 일부 조직의 도청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DJ정부에선) 정권이 책임질 만한 과오는 없었다”며 DJ에게 보호막을 쳐 주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줄 알았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노 대통령의 ‘단정’은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이제 DJ정부의 몸통이 국민 앞에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해야 한다. 노 정권은 이 사안에 정치적으로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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