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영언]박물관 옆 미군 땅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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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복원만이 아니다. 서울 2005년 가을, 또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시대’의 개막이다. 지난 주말 신축 현장을 둘러봤다. 다음 달 28일 개관을 앞두고 유물 진열, 설명문 설치, 안전 점검, 조경 등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우리 손으로 지은 독립된 전용 건물의 첫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이 공간에 담긴 의미는 각별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45년 광복 직후 조선총독부가 운영해 오던 박물관을 넘겨받아 문을 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이전을 거듭했지만 대부분 건물을 수리해 사용하는 수준이었다.

장소가 용산이라는 점도 되새겨 볼 만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왕조 시절 훈련원의 조련장이었다. 하지만 그 후 줄곧 외국군의 병영(兵營)이 들어섰다. 청일전쟁 때는 청군, 일제강점기엔 일본군이 진을 쳤고, 광복 이후 미군(8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곳에 우리 문화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는 1만1000여 점의 유물을 간직하는 한국의 대표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이다. 전통 건축과 현대 감각을 조화시킨 성곽 모양의 본관 건물만 봐도 보기 좋다. 모든 건물은 리히터 규모 6.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시설이 돼 있다.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시민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 교육 활동의 장(場)이 되길 기대한다.

박물관 신축 현장에서 인근 미 8군 지역을 바라보며 박물관과 미군 부대 터를 묶어 하나의 복합 문화단지로 조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박물관 터는 9만3000평이지만 현재 미 8군이 사용 중인 터는 거의 100만 평이다. 정부는 2008년 말 미군이 경기 평택시로 이전한 뒤 이곳을 생태공원 성격의 ‘민족공원’으로 조성하기로 방향을 잡아 놓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5조 원이 넘는 미군 이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에 이 땅을 판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무상 반환을 요구하고 있어 타협에 진통이 예상된다.

양측의 견해차가 워낙 크다 보니 최악의 경우 일부는 공원으로 쓰고, 일부는 민간에 매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터 일부에 아파트나 일반 건물이 들어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땅이 쪼개지지 않도록 정부와 서울시,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많은 문화예술인은 이곳을 단순한 생태공원이 아닌 문화공원으로 조성해 ‘나 홀로 박물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앙박물관과 연계해 또 다른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전시장 등을 짓고 건물 사이사이를 공원으로 꾸미자는 것이다. 다른 곳에 있는 문화시설을 옮겨 올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에, 국립극장은 남산에, 예술의 전당은 우면산에 있는 등 주요 문화시설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이들을 한군데로 모으는 문화 설계가 필요하고 용산이 최적지(最適地)라는 의견이 있어 왔다.

문화시설을 한곳에 모으면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의 생산성과 활용도가 높다. 루브르박물관을 중심으로 많은 문화시설이 모여 있는 파리의 경우가 이를 입증한다. 용산이 ‘병영의 땅’에서 ‘문화의 땅’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다면 그 의미는 크다.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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