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임진각과 평화누리

  • 입력 2005년 9월 13일 03시 07분


코멘트
얼마 전 경기 파주시의 임진각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그 자체였다. 전쟁, 철책선, 실향민, 눈물 등의 우울한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 주변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망배단과 비무장지대(DMZ) 철책선 바로 옆, 주차장과 논이 있던 수만 평에 공원이 조성된 것이다. 이름도 푸근한 느낌을 주는 ‘평화누리’다. 이 공원은 안보 관광지에 머물던 임진각의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했다.

평화누리에는 수상 무대를 갖춘 2만 평이 넘는 국내 최대의 야외 공연장인 ‘음악의 언덕’, 바람개비로 세계지도를 그린 ‘바람의 언덕’, 3000개의 촛불을 밝힐 수 있는 ‘생명 촛불 파빌리온’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수상무대에서 잔디밭 객석인 ‘음악의 언덕’을 바라보는 모습은 장관이다. 부챗살처럼 퍼진 잔디 언덕 끝이 파란 하늘과 맞닿은 모습이 시원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평화누리가 들어서면서 3층짜리 임진각은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분단의 아픔이 아니라 통일의 희망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다.

평화누리에서는 8월 1일부터 엊그제 11일까지 경기도 주최로 ‘제1회 세계평화축전’이 열렸다. 추상적인 개념인 평화를 주제로 42일 동안 계속해서 축제를 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평화축전을 제안한 손학규 경기지사는 “평화를 전쟁과 갈등의 반대 개념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면서 “나눔과 배려가 바로 평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번 축전도 이웃에 대한 배려와 서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경기도가 밝힌 평화축전 결산 내용을 보면 첫 행사치고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1만 원씩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벽돌에 새겨 쌓은 ‘통일 기원 돌무지’ 조성을 통해 2700여만 원을 모았다. 또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신청하는 ‘생명 촛불 파빌리온’의 촛불 켜기에는 4200여 명이 참여해 1억2700여만 원을 모금했다. 이렇게 모은 돈은 유엔아동기금(UNICEF)을 통해 북한 어린이 돕기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다양한 문화 행사도 이어졌다. 국내외 예술인 3780명이 200여 차례의 각종 공연을 펼쳤다. 여기에 평화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와 강연회 전시회도 열렸다.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통해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직간접적인 방법들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미국 CNN 창립자 테드 터너 씨, 국제두루미재단 조지 아치볼트 이사장, 최재천 서울대 교수 등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참여한 ‘DMZ포럼’은 DMZ 활용방안을 제시한 선언문을 채택해 눈길을 끌었다. ‘생명 평화 지속가능 발전 정신에 입각해 남북한이 함께 협력해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어 보전해 감으로써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극복하고 평화와 환경 보전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야 한다.’

평화축전을 마친 경기도는 평화누리를 공존과 배려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행사에 계속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성 관광 등 남북 왕래가 본격화되면 방북 길목에 있는 평화누리를 찾는 사람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임진각에서 분단과 망향의 한을 달래던 많은 사람들이 평화누리를 둘러보면서 평화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