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98>卷六. 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7월 1일 03시 34분


코멘트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한왕이 역양((력,역)陽)에 이르러 보니 사람을 풀어 관동(關東)의 소식을 꿰고 있던 소하는 마치 한왕이 그렇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빈틈없이 준비해놓고 있었다. 지난해 끝낸 호구조사를 통해 알아둔 장정 3만을 새로 뽑아 조련하는 중이었고, 창고마다 군량이며 피복 갑주에 병장기가 가득했다.

역양에 든 지 스무날도 안돼 3만이 넘는 군사가 늘고, 넉넉한 군량과 병장기까지 갖춰지자 한왕의 기세는 다시 살아났다.

“어서 함곡관을 나가 때가 늦기 전에 형양성을 구하자. 기신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주가와 종공까지 항왕의 손에 죽게 할 수는 없다.”

한왕이 그러면서 서두르기 시작했다. 다른 장수들도 굳이 그런 한왕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이에 관중에 든 지 보름도 안돼 군사를 몰아 함곡관으로 나오려는데 한 서생(書生)이 한왕을 찾아왔다. 원래 진(陳)나라 대부(大夫)의 후예였으나, 몇 대째 관중에 살고 있다는 원씨(轅氏) 성을 쓰는 서생이었다.

“선생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과인을 찾아오셨소?”

그새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한왕이 원생(轅生)을 행궁(行宮) 안으로 맞아들이고 공손하게 물었다. 원생이 목청을 가다듬어 말했다.

“한나라와 초나라가 형양에서 서로 맞붙은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언제나 우리 한군(漢軍)이 고달프게 내몰렸습니다. 바라건대 군왕께서는 이번에는 무관(武關)으로 나가 보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항왕은 틀림없이 군왕을 따라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그때 군왕께서는 성벽을 높이 하고 굳게 지키기만 하시면, 항왕을 그곳에 묶어둘 수 있어 성고와 형양의 우리 군사들은 쉴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다음 대장군 한신 등으로 하여금 하북(河北)의 조(趙)나라 땅을 온전히 거둬들이게 하시고, 다시 연(燕)과 제(齊)와 굳건히 이어지게 하십시오. 군왕께서 형양으로 다시 가시는 것은 그 뒤라도 늦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만 하신다면 초군(楚軍)은 막고 지켜야할 곳이 많아져 힘이 나누어지고, 우리 한군(漢軍)은 편히 쉬었으니 다시 초나라와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기게 될 것입니다.”

한왕이 들어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거기다가 이미 낙양에서 관영과 조참을 대장군 한신에게 보낸 것과도 맞아떨어지는 계책이라 한왕은 원생의 말을 따랐다. 군사를 남쪽으로 돌려 무관으로 향했다.

3만 군사와 함께 무관을 나온 한왕은 옛 한나라 땅을 가로질러 완읍(宛邑)으로 갔다. 그때 완성(宛城)은 초나라 장수가 군사 몇 천 명과 함께 지키고 있었다. 한왕은 먼저 완성을 빼앗아 요란스러운 소문부터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는 패왕에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동쪽으로 섭성(葉城)을 빼앗아 또 한번 요란스러운 소문을 북쪽으로 올려 보냈다.

완읍과 섭읍을 지키던 장수들로부터 잇따라 급한 전갈을 받자 정말로 패왕은 그냥 형양성을 에워싸고 있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주가와 종공이 워낙 죽기로 맞서 형양성의 싸움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거기다가 밉살스러운 유방이 나타나 두 읍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거기서 장정과 물자까지 거둬 세력을 키우고 있다고 하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