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임규진]세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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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世宗)이 즉위한 1418년 강원도에 큰 흉년이 들었다. 감찰관으로 파견된 ‘백두산 호랑이’ 김종서는 굶주리는 백성 729명의 세금을 면제해 주자고 건의했다. 세종은 이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흉작인데도 풍작으로 서류를 조작한 관리에 대해 “이런 자들이 바로 백성을 등쳐먹는 자”라며 엄중 문책을 지시했다. 감사원은 홈페이지(www.bai.go.kr)의 어린이마당에 이런 옛 감사 사례를 올려놓고 있다.

봉건사회에서도 홍수나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 현군(賢君)은 스스로 검소한 생활을 하고 관리들의 급여도 삭감해 백성의 세금 고생을 덜어 줬다. 긴축을 솔선수범하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부터 한 셈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주축인 현대사회에선 ‘경제의 풍흉(豊凶)’을 사람이 결정한다. 잘못된 제도는 북한처럼 만성적 경제난을 낳는다. 정책을 잘못 써도 외환위기 때처럼 큰 흉년을 맞는다.

3년 연속 성장의 흉년이 계속되는데도 정부는 세금 올리기에 바쁘다. 시장이 따라주지 않고 정책의 역효과만 커지는 데도 ‘세금 방망이’로 집값 땅값 안정, 빈부격차 해소 등을 다 하겠다고 한다. 자생적 경기(景氣)에 찬물을 끼얹어 놓고 세금 더 거둬 경기를 살리겠다고 한다.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은 곳곳에서 줄줄 샌다.

이처럼 세금부담 증가에 재정운용 비효율이 겹쳐 민간부문의 활력이 더 위축돼도 ‘작은 정부보다는 효율적인 정부가 좋다’고 천연덕스럽게 강변한다. 현 정부가 ‘비효율적인 큰 정부’임을 알 만한 국민은 다 아는데도 배짱이 두둑하다.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는 50조 원짜리 서남해안 개발 국책사업을 국민 모르게 추진하기도 했다. 이미 국책사업 표류로 수조 원의 혈세가 더 들어가게 생겼지만 정부에선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없다.

올해 들어 넉 달 동안 재정 66조 원을 퍼부었는데도 1분기 성장률이 2.7%에 그쳤다.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폈다면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투자하겠다는 기업들의 애로를 풀어 주지도, 여유 계층이 마음 편하게 소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거꾸로 시장경제원리보다 상위에 ‘양극화 해소, 균형발전’ 같은 포퓰리즘적 이념을 올려놓고 반(反)기업, 반부자 정서를 교묘하게 부추겨 왔다.

투자와 소비가 가라앉는데 어떻게 윗목까지 온기(溫氣)가 퍼져 격차가 좁혀질 것인가. 대통령 소속 위원회들이 책상에 앉아 국토균형발전 계획만 세우면 재원(財源)이 저절로 생겨 전국에 십수 개의 이상(理想)도시가 뚝딱뚝딱 만들어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정부는 올해 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세금을 더 걷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목표대로 거두지 못한 세수(稅收) 부족액이 4조3000억 원이나 됐다. 그나마 세무 당국이 법인과 개인을 상대로 마른 수건 쥐어짜듯 했는데도 그렇다. 이는 국민의 납세 능력이 한계에 와 있다는 뜻이다.

세금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납세자들을 더는 힘들게 하지 말고 예산사업 재검토와 공공부문 구조조정부터 하라. ‘무능 무책임 정권’에 ‘가렴주구(苛斂誅求) 정권’이라는 낙인까지 찍혀서야 되겠는가.

임규진 논설위원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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