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27>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8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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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장군께서 싸우시려고 해도 연나라가 든든한 성곽에 의지해 지키기만 하면, 시일이 오래 걸려 힘으로 성을 떨어뜨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군대의 고단하고 지친 실정만 들키고 기세가 꺾인 채로 시일만 끌다가, 군량이라도 다하는 날에는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거기다가 약한 연나라가 그렇게 버텨내는 걸 보면 제나라도 쉽게 항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밖으로 방비를 굳게 하고 안으로 백성들을 다독여 반드시 대장군께 맞서 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나라와 제나라가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는다면, 유씨(劉氏)와 항씨(項氏)의 싸움은 쉽게 승패를 가늠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그같이 되는 것은 대장군께도 결코 이롭지 못한 변화일 것입니다.

저의 어리석은 헤아림으로는 지금 서둘러 연나라와 제나라를 치는 것이 잘못입니다. 무릇 군사를 잘 부리는 사람은 이쪽의 여림을 가지고 적의 굳셈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이쪽의 굳셈으로 적의 여림을 친다 하였습니다.”

이좌거가 그렇게 말을 맺자 한신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계책을 써야 공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대장군을 위한 계책으로는, 싸움을 멈추고 장졸들을 쉬게 하며 방금 평정한 조나라를 어루만지는 일보다 더 나은 게 없을 듯합니다. 먼저 이번 싸움으로 아비를 잃은 아이들과 자식을 잃은 늙은이들을 찾아내 보살펴 주고, 백리 안에서 쇠고기와 술로 날마다 잔치를 벌여 사대부(士大夫)들을 대접하십시오. 그리고 군사들에게도 술과 고기를 내리고 편히 쉬게 하여 크게 사기를 북돋운 뒤에 북쪽 연나라로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싸움을 앞세우지 말고 말 잘하는 변사(辯士)를 먼저 쓰십시오. 그를 사자로 삼아 대장군의 글을 받들고 가게 해서 이쪽의 강점과 장처(長處)를 일러주게 하면 연나라는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나라가 항복하면, 다시 변사를 동쪽 제나라로 보내 연나라가 이미 항복하였음을 알리십시오. 그리고 슬며시 항복을 권한다면 제나라는 바람에 휩쓸리듯 연나라를 뒤따를 것입니다. 그때는 비록 제나라에 슬기로운 이가 있다 하더라도 제나라를 위해 아무런 계책도 내지 못할 것이니, 이렇게만 되면 천하의 일은 다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군사를 부리는 데 ‘큰소리가 먼저요, 진짜 싸움은 나중’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킵니다.”

이좌거가 그렇게 말하자 한신은 바로 알아들었다.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예로 절을 올리며 공손하게 말하였다.

“좋습니다. 반드시 선생의 계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이좌거가 일러준 대로 했다. 군사들을 배불리 먹여 편히 쉬게 하고, 조나라 백성들을 따뜻이 어루만졌다. 쫓기던 조왕(趙王) 헐(歇)이 오래잖아 양국(襄國)땅에서 잡혀 죽고, 한신은 날마다 잔치를 열어 조나라의 사대부들을 접대하니, 마침내는 그 사대부들도 모두 한나라를 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나라가 아래위로 안정되고 군사들도 충분히 쉬었다 싶을 무렵, 한신은 다시 대군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든 일을 이좌거가 일러준 대로 따랐다. 군사를 북쪽으로 내기 전에 먼저 말 잘하는 사자를 보내 연나라를 달래 보게 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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