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5년 DJ-YS 야당 통합

  • 입력 2005년 3월 14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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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의 호칭 순위 문제에 신문이 지나칠 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나는 이에 전혀 구애받지 않겠다. 내 이름을 나중에 써도 좋다.”

1985년 3월 15일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의 김영삼(金泳三·YS) 공동의장은 김대중(金大中·DJ) 고문과 만나 야당 통합 원칙에 합의한 뒤 이렇게 말했다.

YS의 아름다운 양보 때문일까. ‘두 김 씨’란 중립적인 신문 제목이 이날부터 ‘김대중-김영삼 씨’로 분명해졌다. 두 사람은 “국민 여망에 따라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 사심(私心) 없이 나가겠다”는 약속도 함께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신군부의 싸늘한 군홧발에 짓밟힌 지 5년 만에 첫 공식 회담을 가진 DJ와 YS. 그들의 의기투합은 민주 세력에는 훈훈한 봄바람 같았다.

바로 다음날인 3월 16일자 동아일보 사설.

“(두 김 씨의) 합동회견 내용을 보고 이제 ‘서울의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하면서 이들의 결속이 모두가 갈망하는 정치발전을 위해 긍정적으로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1987년 제13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 단일화’라는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두 사람. 신문 지면의 호칭 순서와는 반대로 ‘YS-DJ’ 순으로 끝내 둘 다 대통령을 지냈건만 1985년 그날의 결속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월간 신동아 2003년 10월호에 실린 YS의 인터뷰.

“DJ와 화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런 생각은 전혀 없고요.”(YS)

“오랜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잖습니까.”

“DJ가 하도 나를 많이 속여먹어서요.”(YS)

YS의 이런 독설을 DJ는 이제껏 침묵으로 무시해 왔다.

최근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피해 지원금 모금에 공동으로 나서 세계적 화제가 된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 그들은 한때 서로를 ‘얼간이(클린턴)’ ‘믿지 못할 사람(부시)’이라고 비난하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어깨동무한 채 “공통의 인간애를 기억한다면 정치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합창한다.

한국을 대표해 온 두 정치인 DJ와 YS의 어깨동무, 아니 따뜻한 악수라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긴 올까. 달리 생각해 보면 이미 살아서 이룰 것을 다 이룬 두 사람이 ‘화해’의 필요성을 느끼기나 할까. 벌써 DJ는 81세, YS는 78세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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